세계 속의 한식? 화제 모은 가게들 근황은
[경향신문]
[언더그라운드.넷] 런던 국밥, 뉴욕 통닭, 네덜란드 꿩만두, 핀란드 수육덮밥, 이탈리아 칼국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국제적 성공 덕분일까. 10월 하순 ‘세계 속의 한식’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 실제 영국 런던에 있는 국밥집이나 미국 뉴욕에 있는 통닭가게 사진이 아니다. 한국 자영업 식당 간판을 찍은 사진들이다. 저 가게들은 도대체 왜 저런 이름을 지은 것일까.
인터넷 유행도 타이밍이다. 물들어올 때 노 저으라했던가. K팝과 오징어게임 열풍에 편승해 다시 유행을 탔지만 이미 4~5년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던 사진이다. 사진시리즈의 작명만 바꿔 다시 도는 것이고.
이 시리즈의 과거 이력을 추적해보면 2017년, 그러니까 4년 전 루리웹에 올라온 ‘한식세계화에 김치를 선봉에 세우지 말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그 ‘증거’로 제시한 것이 위 사진들이다.
“런던은 국밥이, 네덜란드에는 꿩만두가, 핀란드에는 칼국수가 이미 전해졌다.”
연원을 추적해보면 4~5년 전부터 돌던 사진들이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우선 런던 국밥. 전화했지만 받는 사람이 없다.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 있던 가게다.
인터넷에 올라온 방문기들을 보면 의외로 평범한 국밥 맛이었던 모양이다. ‘이었던’이라고 과거형을 쓴 이유는 현재 사진 속 자리엔 초밥체인점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이 가게를 운영했던 남매(부부가 아니라 남매라고 한다)가 개설한 인스타그램이 나온다.
“‘국내산’ 생고기만 사용해 100% 사골로 밤새 정성껏 끓였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인스타그램의 마지막 업데이트는 2016년 3월 5일에서 멈춰 있다. 초밥가게를 운영하는 체인점 본사 측은 자신들이 그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이 2016년 7월경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그해 봄 정도에 사라진 가게다.
뉴욕통닭은 지금도 있다. 대구시 동성로 3가 염매시장 맞은편에 있는 가게다. 대구 3대 통닭집으로 뽑힌다는 인터넷 게시물도 있던데 나름 통닭맛집인 모양이다. 전화를 걸어 기자라고 신원을 밝히니 채 용건을 말하기도 전에 “…아뇨, 괜찮습니다”라며 끊는다. 구독이나 협찬 요청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네덜란드 꿩만두? 역시 찾아보면 강원도 횡성지역 맛집으로 등극해 있다. 사진 속 간판은 꽤 오래된 듯하지만 지금은 영업시설을 더 확장했다. 왜 네덜란드가 붙어 있는지는 이곳을 탐방한 한 유튜버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인근에 6·25전쟁 네덜란드 참전기념비가 있다.
대전시 서구 월평동에 자리 잡은 핀란드 수육덮밥은 인터넷에서는 이미 네임드다. 여러 유튜버가 찾아가 “도대체 왜 핀란드냐”, “수육덮밥은 왜 안 파는지” 물었다. ‘핀란드’는 점주 정찬영씨(45)가 TV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고 세계에서 가장 청정국가 이미지에서 따온 것이고, ‘수육덮밥’은 초창기에는 있었는데 너무 맛이 없어 접은 메뉴다. 원래 간판에 있었던 핀란드 국기는 색이 뒤집혀 있어서 내렸고, 현재 돈가스, 잡채밥, 쌀국수를 메인 간판 자리에 써놓고 운영하고 있다.
궁금한 점은 위 가게들의 공통점이 이름을 지을 때 지역명+보통명사의 형식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이 코너에서도 다룬 남산돈가스 분쟁 사례처럼 저 경우 식별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돼 상표등록이 안 된다. 다시 말해, 설혹 정말 맛집으로 유명세를 얻는다면 누군가 모방해 같은 이름으로 가게를 내더라도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 특허청 상표검색을 해보니 위 가게 중 등록된 상표는 없다. 예외적으로 ‘네덜란드 꿩만두’ 상표를 2003년 3월 강원도 원주시에 거주하는 조모씨가 냈는데 거절됐다. 더 알아보니 이 가게는 교직원이던 조씨의 부인이 운영하던 가게다. 현재는 부인 쪽 인척이 운영하고 있다.
핀란드 수육덮밥의 경우 간판 옆에 가맹점 문의 안내 번호가 있는데, 일단 상표등록부터 쉽지 않을 것이다.
“아, 가맹점이요? 사실은 크게 가맹점을 모집할 생각은 없습니다. 누가 붙여놓으면 좋다고 해서요.”
핀란드 수육덮밥 점주 정씨의 말이다. 진지하게 물었는데, 꽤 쿨한 답변이 돌아왔다. 런던 국밥 등 인터넷밈화됐던 다른 가게의 근황을 전하며 영업상황을 물었다.
“코로나 시국에 영업이 잘된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죠. 인터넷에서 보고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은 지금도 가끔 있습니다.”
어려운 시절이지만 분투를 빈다. 파이팅!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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