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노동위기] ③ 어려워도 가야할 길 '정의로운 전환'

임기창 2021. 10. 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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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호-노동자 보호 '동맹' 개념..유엔 등 국제사회도 수용
탄소중립법에 언급됐지만 "아직은 추상적·소극적" 지적도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기후위기가 노동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을 논할 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 있다. 미국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치가 주창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다.

개념이 본격 등장한 1990년대에는 환경보호 정책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위한 지원 정책을 펴는 정도로 여겨졌으나 이후 점차 범위가 확대돼 친환경·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전환,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보호할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 폭넓은 의제를 다루게 됐다.

국제사회에서도 이 개념을 적극 받아들였다. 2015년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 '정의로운 전환'에서 요구한 '모든 이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등의 의제가 반영됐고, 국제노동기구(ILO)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파리 기후협약에도 이 개념이 포함됐다.

'정의로운 전환'을 어떻게 실천할지를 두고는 다양한 담론이 등장했는데, 노동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국제노총(ITUC) 산하 '정의로운 전환센터'가 정리한 기본 요소에 핵심 요구들이 명시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 화석연료사업에 종사한 고령 노동자들을 위한 소득지원·재교육·재배치·연금 보장 ▲ 청정 대도시 발전을 위한 부문별 계획에 노동자 참여 ▲ 기후재해와 연관된 구조·재건·회복 관련 일자리 공식화 ▲ (기후변화) 적응과 완화에 필수적인 양질의 일자리 투자 보장 등이다.

아울러 '모든 관계 당사자들과의 사회적 대화, 노동자 및 노동조합과의 집단교섭, 공적이고 법적 강제력이 있는 협약에 대한 감독'을 이같은 과정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발전소(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국제적 추세에 발맞추려 하는 한국도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반영하고 있기는 하다. 작년 9월 제정돼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도 이 개념이 별도 장으로 마련돼 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정의로운 전환'을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해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으로 정의한다.

다만 '기후위기 사회안전망 마련',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 지정', '사업전환 지원', '협동조합 활성화' 등 항목에 따른 추상적 차원의 언급이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 있다. 시행령 등 하위법령에서 구체화한 각론이 나올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그리 적극적인 수준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석탄화력발전소가 많은 충남처럼 탄소중립 이행의 영향을 선제적으로 받는 지역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발전소 폐쇄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영향을 분석하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책을 논의하는 등 중앙정부보다 한발 앞서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기획위원은 "현재 정부의 정의로운 전환은 전직 훈련이나 재취업 지원 등 매우 소극적이고 실제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된 방식을 다시 들고나오는 수준"이라며 "석탄발전소의 경우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처우 격차가 매우 큰데, 일자리 보장도 지금의 불평등한 이중적 노동시장을 그대로 둔 채 일자리 수만 따지는 식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지역사회 등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돼야만 전환 과정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노동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노총도 사회적 대화 등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통로를 마련하는 것을 '정의로운 전환'의 기본 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전력수급계획 등 방향성은 정부가 잡는 대로 간다고 해도 이해당사자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이해는 구해야 한다"며 "갈등관리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하고, 지역사회의 이해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된 전환이 어렵다"고 했다.

한재각 위원도 "정부는 소극적이고, 기업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태도를 정하고 발언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사자 간 '힘의 균형'이 맞춰져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기본적인 사회적 대화를 위한 환경 보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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