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노동위기] ① 탄소와의 싸움, 일자리는 안전할까
재취업 지원·교육 등 대책에 노동계는 "실효성 부족" 불만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이달 15일 경남 고성군 한국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에서 근무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A(38)씨가 발전소 내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15년부터 삼천포발전본부에서 하청노동자로 근무한 A씨는 2028년 6호기 폐쇄를 앞두고 고용 불안을 우려하다 공기업 이직을 준비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중립 실현 등 기후 위기 대응 과정에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등 에너지 전환이 이미 시작된 가운데 현장에서는 이와 관련한 고용 불안도 커지고 있다. 전 지구적 흐름을 따르는 데서 비롯하는 불가피한 변화이긴 하나 당장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이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정부도 친환경 신규 일자리 창출, 인력 구조조정이 발생할 경우 재취업 지원 등 고용 대책의 큰 그림을 제시하고는 있으나 노동계는 추상적이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회의적인 반응이다.
사라지는 석탄화력발전소…이미 시작된 고용불안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해 선제적으로 영향을 받는 분야는 석탄화력발전이다.
정부는 작년 12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2034년까지 30년 가동 기준으로 노후 석탄발전소 30기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24기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전환한다. 현재 충남 보령 1·2호기와 경남 고성 삼천포 1·2호기가 이미 폐쇄됐고, 전남 여수 호남 1·2호기도 올해 말 폐지된다.
대형 사업장인 발전소가 연이어 사라지면 일자리에 미치는 타격은 일정 부분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도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공정한 노동 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석탄화력발전 부문에 대해 "발전사는 퇴직 등 자연감소·인력재배치 등으로 대응하나 발전소 폐지에 따라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특히 원료 운반, 환경설비 등을 담당하는 소규모 협력업체에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발전소 폐쇄로 인한 일자리 상실은 이미 현재진행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보령 1·2호기 폐쇄 이후 1차 용역업체 노동자 285명 중 16명이 해고됐고, 6명은 정년퇴직 방식으로 일터를 떠났다. 다른 지역으로 일자리를 옮긴 노동자는 200명 이상이며, 보령지역으로 재배치된 인원은 63명에 불과했다.
현장에서는 고용 불안을 느낀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정의당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연구팀'이 발전 비정규노동자 3천634명으로부터 응답을 받아 지난 5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발전소 폐쇄로 고용 불안을 느끼는지에 관한 질문에 '매우 그렇다'가 37.5%, '그렇다' 38.5%, '보통' 16.3%로 92.3%가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발전소 폐쇄 시점을 '정확히 안다'는 응답은 8.7%에 불과했고, '대략 듣기는 했지만 정확한 시점은 모른다'(61.5%), '잘 모르겠다'(28.7%)가 다수를 차지했다. 폐쇄 관련 정보를 회사 관리자한테서 들었다는 응답은 8.0%에 그쳐 고용 안정과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에너지산업 전환에 따른 고용영향평가 시행, 신규 일자리 창출, 재취업 교육 등을 골자로 한 포괄적 방향을 내놓았지만 노동계는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분위기다.
이승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실장은 "정부가 내놓은 전직 지원·취업교육 패키지는 연령대와 지역별 편차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제한적이고,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등으로 구조조정 사업장이 발생할 때마다 내놓은 대책과 유사하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이미 드러났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 등으로 신규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일자리를 잃은 기존 노동자들이 재배치되기까지 시차 또는 물리적 공간 격차가 생길 수 있고, 그마저 업무가 크게 달라지면 재취업조차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노동계는 화력발전소 노동자를 재생에너지 인력으로 우선 전환해 직무 불일치를 해소하고, 에너지 전환과 관련한 정책 수립 과정에서 노조와 중앙정부 간 노정 교섭을 보장하는 방안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 확대…자동차 업계 미래도 안갯속
자동차 업종도 기후 위기 대응에 민감한 영역 중 하나다. 탄소 배출의 또 다른 '주범'으로 꼽히는 내연기관차 생산이 줄고 전기차 생산이 확대되면 부품 수 감소 등 여파로 제조인력 수요가 줄어 고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무공해차 385만대를 보급하는 것이 정부 목표다.
현대자동차도 올 초 첫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5 생산라인 투입 인원을 두고 노사가 입장차를 보이다 결국 합의안을 도출하는 등 국내 업계에서도 영향이 감지되는 분위기다. 이 역시 전기차 부품이 내연기관차보다 30%가량 감소한 데 따른 투입 인원 조정에서 비롯한 문제였다.
정부도 올 7월 발표한 '한국판 뉴딜 2.0 추진계획'에서 전기차 등 미래차 관련 직무전환 훈련체계 구축, 불가피한 이직 시 재취업·창업 유도 등 일부 대책을 내놓았다.
자동차 제조업 현장에서는 고용 불안 등 이유로 이같은 변화를 늦추길 바라면서도, 불가피하다면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 시점을 정부가 명확히 제시해달라는 목소리가 있다. 탄소 감축의 핵심은 내연기관차 생산을 언제 중단하느냐이고, 전기차 보급은 소비자의 선택 문제이기도 해 부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성희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생산 중단 시점이 제시되면 단체교섭에서 그에 대한 일정을 다루면서 전환교육 등 여러 고민을 할 텐데 그런 게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현장 조합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명확한 시점을 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미래차 생산 확대로 제조인력은 감소하고 차량 소프트웨어 영역 인력이 느는 상황은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 유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생산직 노동자들이 소프트웨어 분야로 재배치되기는 어려워 퇴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직자를 배려한 구체적 이직 교육 등이 화두가 될 전망이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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