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소시오패스' 논란의 두 가지 측면 [쓴소리 곧은 소리]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2021. 10. 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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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배우, 경조증 의심" 글 SNS에 올린 정신과 의사, 학회에서 제명
대통령은 배우와 달라..의사에게 위험 경고 의무 부과한 판례도

(시사저널=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소시오패스란?

소시오패스(sociopath)는 사회를 뜻하는 society와 병적 상태를 의미하는 pathology를 합성한 단어로 의학 용어로 풀이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ASPD)를 뜻한다.

지난 10월20일,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원희룡 후보의 아내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강윤형씨가 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후보를 소시오패스라고 평가해 파문이 일었다. 배경은 이랬다. 매일신문 유튜브 방송에서 진행자가 이재명 후보에 대해 "야누스, 지킬 앤 하이드가 공존하는 사람 같다"고 말하자, 강윤형씨가 "지킬과 하이드, 야누스라기보다는 소시오패스나 안티소셜(anti-social) 경향을 보인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하는데 자신은 괴롭지 않고, 주변이 괴로운 것이어서 치료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원희룡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의 부인 강윤형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원 후보, 이재명 캠프 소속 현근택 변호사ⓒ매일신문 유튜브 캡쳐

"자기는 괴롭지 않고 주변이 괴로워, 치료 잘 안 돼"

강윤형씨의 발언이 나오자 여당은 "의료윤리를 위반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리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강윤형씨에게 구두 경고를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강윤형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해당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에 정정보도 요청을 했다). 그렇다면 강윤형씨는 의료윤리를 위반한 것이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의료윤리를 위반한 것이 맞다.

골드워터 룰(Goldwater Rule) 위반=1964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FACT'라는 미국의 어느 잡지사가 1만2356명의 정신과 의사를 상대로 공화당 대선후보인 배리 골드워터의 정신상태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었다. 설문에 응한 2417명의 정신과 의사 중 1189명이 "골드워터의 정신상태는 대통령직 수행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이어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참패한 골드워터는 잡지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 사건은 정신과 의사가 자신이 직접 진료하지 않은 유명인에 대한 견해를 내놓을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이 일어난 지 9년 후인 1973년 미국정신과학회는 "직접 진료하고 정보 공개에 대해 허락받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과 의사가 전문가적 의견을 제공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라는 윤리규정을 채택했다. 이것이 골드워터 룰로 불리게 되었고 대한신경정신과의학회도 이를 학회 정책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이 골드워터 룰이 실제 적용된 사례가 있다.

2017년 신경정신의학과 전문의 K씨가 국내 유명 배우를 특정하며 "경조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자신의 SNS에 올렸는데 이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과학회는 "정신과 의사가 특정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말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직접 진료하지 않은 인물의 정신적 상태에 대해 전문가적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라며 의사 K씨를 학회에서 제명하는 조치를 내린 것이다. 다만 학회는 그가 단순히 골드워터 룰을 위반했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제명했던 것은 아니다.

골드워터 룰 위반 사건 외에도 K씨가 환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환자의 신상정보와 비밀 등을 자신이 운영 중인 카페에 폭로했으며 그 밖에 몇 가지 의료법을 위반한 행위 등을 종합해 학회에서 제명 조치를 내린 것이다. 어쨌든 의사 K씨의 사례와 강윤형씨의 발언은 자신이 직접 진료하지 않은 사람의 정신건강 상태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의견을 냈다는 공통점이 있고, 학회가 이를 제명 조치의 이유로 거론한 사례가 있어 이번 강윤형씨의 발언도 골드워터 룰을 위반한 것은 명백해 보인다.

경고 의무(Duty to Warn)=그런데 정신과 의사가 지켜야 할 의무는 '골드워터 룰' 외에 또 다른 의무가 있다. 이른바 '경고 의무'다. 이 개념은 오래전 미국에서 일어났던 이른바 '타라소프 사건'에서 출발했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1969년 미국의 '포다르'라는 대학생이 자신과 잠시 사귀었던 '타라소프'라는 여대생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자신의 상담을 맡고 있던 심리상담사에게 털어놓았다. 환자로부터 범죄 계획을 들은 심리상담사는 이 사실을 학교경찰에 알렸고, 포다르는 구금되었으나 타라소프와 가족은 포다르의 살해 계획에 대한 내용을 경찰이나 상담사로부터 듣지 못했다. 얼마 후 경찰은 별다른 혐의점이 없다며 포다르를 풀어주었고 풀려난 포다르는 계획대로 타라소프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사건이 벌어진 후 타라소프의 가족은 학교 측이 포다르의 살해 계획을 피해자와 가족에게 미리 알려주었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학교 당국을 고소했다.

타라소프의 유가족은 1심과 2심에서 패했으나 사건 7년 후인 1976년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정신건강 전문가는 환자뿐 아니라 환자에게 특히 위협을 받고 있는 개인을 보호할 의무도 함께 지닌다"고 판결하며 가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문가에게 환자의 비밀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환자가 가진 위험성으로 인해 피해를 당할 수 있는 개인을 보호할 또 다른 의무, 이른바 '경고의 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의료윤리 위반이냐, 경고 의무 이행이냐

이 부분에서 의사 K씨와 강윤형씨의 발언에 차이점이 있다. 어떤 배우가 시청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없겠으나 군통수권자이자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은 주어진 권력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 국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강윤형씨의 발언 배경에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는 "두렵다"고 말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 나라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의사는 골드워터 룰이라는 의료윤리를 지켜야 하는 의무와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될 국민에게 그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는 경고 의무 사이에서 갈등할 수 있다. 이번 강윤형씨 발언에 대해 골드워터 룰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경고 의무가 적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선거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라의 운명이 달린 판단이 될 수도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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