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당' 아이스크림에 날아간 남양유업 매각
쟁점 '선행 조건' 법원 판결문서 드러나
외식사업부 분사·예우 요구..법원, 일축
[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팀이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결국 '욕심'이었다
궁금했던 것이 풀렸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욕심이 아니길 바랐지만 결국 답은 욕심이었습니다. 과한 욕심을 부리면 그 결말이 좋지 않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네, 맞습니다. 또 남양유업 이야기입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던 남양유업 매각 불발의 이유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최근 몇 달간 남양유업은 화제의 중심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불가리스 사태부터 홍 회장의 경영 퇴진 및 대국민 사과 그리고 이어진 남양유업 매각까지 참 드라마틱한 전개였습니다. 그러다 사달이 났죠. 한앤컴퍼니와 남양유업 매각 계약을 체결했던 홍 회장이 갑자기 변심하면서 남양유업 매각은 결국 불발됐습니다.
그 이후 전개는 다들 아실 겁니다. 홍 회장과 한앤컴퍼니측의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죠. 하지만 상황은 홍 회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홍 회장은 현재 코너에 몰렸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도 그를 동정하지 않습니다.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모두 홍 회장이 자처한 일입니다. 이제 홍 회장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어 보입니다.
반면 한앤컴퍼니는 승기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과의 공방에서 늘 우위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딱 한가지 때문입니다.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 인수 계약 과정에서 절차를 명확히 지켰습니다. 그랬기에 모든 과정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을 이길 수밖에 없는 강력한 힘입니다. 반면 홍 회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 홍 회장이 코너에 몰린 것은 그의 이런 안일함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백미당'이 발목을 잡았다
그동안 홍 회장이 남양유업 매각 계약을 체결한 이후 갑자기 변심한 이유에 대해 수많은 추측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변심의 이유가 이번 사태의 핵심인데 말이죠. 홍 회장은 "한앤컴퍼니가 거래를 위한 '선행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혀왔습니다. 그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양유업을 못 팔겠다는 것이 홍 회장 주장의 근간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선행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선행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구했다는 것은 그만큼 홍 회장 스스로도 이 조건이 가진 약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외적으로 알려졌을 경우 자신이 불리할 것이 뻔하기에 철저히 입을 다물었을 겁니다. 이는 곧 홍 회장이 본인 스스로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선행 조건은 무엇이었을까요? 지난 27일 법원에서는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과 아내 이운경 고문, 손자 홍승의 군을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결문에 선행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드디어 등장합니다. 판결문에서 밝힌 선행 조건은 바로 '외식사업부의 분사, 일가 임원진들에 대한 예우 등'이었습니다.
남양유업 외식사업부는 홍 회장의 차남인 홍범석 상무가 이끄는 곳입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바로 디저트 카페 '백미당'입니다. 남양유업 브랜드라는 것까지 숨겨가며 알게 모르게 사업을 확장해온 브랜드입니다. 백미당은 커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유기농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입니다. '아이스크림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이미 전국에 80여 곳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켜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홍 회장은 왜 유독 외식사업부를 가져가고 싶어 했을까요. 외식사업부의 핵심은 백미당입니다. 자신의 아내인 이 고문과 차남인 홍 상무가 론칭 때부터 심혈을 기울인 곳입니다. 그런 만큼 애착도 컸을 겁니다. 홍 회장에게 이미 기업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진 남양유업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양유업 브랜드인지 모르는 백미당 등을 가진 외식사업부는 다릅니다.
백미당은 현재 코로나 사태로 적자 상태입니다. 하지만 잠재력은 큰 곳입니다. 그런 만큼 자신의 아내와 아들이 하고 있는 외식사업부만큼은 지키고 싶었을 겁니다. 만일 훗날 아들들이 남양유업을 되찾아올 기회가 생긴다면 그 지렛대 역할을 해줄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재기를 위한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남양유업은 버려도 백미당 등 외식사업부는 지키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홍 회장의 이런 구상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이었지를 명확히 짚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홍 회장 일가가 주장하는 사업부 분사 등이 주식매매계약의 선행 조건으로 확약하려면 분사 절차와 방법, 조건이 상세히 합의돼야 하지만 계약서에는 외식사업부 분사와 관련한 아무런 규정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3107억원에 달하는 돈이 오가는 거래에서 사업부 분사가 선행 조건이었다면 계약서에 그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있었어야 합니다. 이건 상식입니다. 설사 한앤컴퍼니와 구두로 합의를 했을지라도 합의했다는 것을 증명할 무언가가 있었어야 합니다. 훗날 한앤컴퍼니가 발뺌한다면 그에 대응할 무언가를 마련해 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의 과한 욕심이 화를 자초한 셈이 됐습니다.
정말 예우를 원했다면
홍 회장이 제시했던 또 하나의 선행 조건은 '일가 임원진들에 대한 예우'였습니다. 일가에 대한 예우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돼있습니다. 좀 애매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정확히 어떤 예우를 원했던 것인지는 언급돼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는 있을 듯합니다. 좋지 않은 일로 매각하는 만큼 '오너 일가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 실추는 막아달라'거나 '금전적인 보상'을 원했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어떤 형식이든 홍 회장이 예우를 받을 기회는 충분했습니다. 적어도 자신은 경영에서 물러나고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그 순간까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대국민 사과 직전에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켰다가 직위해제된 큰아들을 복직시켰고 작은 아들은 승진 발령했습니다. 거기에 자신은 자신의 말을 한순간에 뒤집었습니다.
예우는 자신이 원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우를 받을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 예우입니다. 그동안 남양유업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사고에서 그는 늘 뒤에 물러서 있었습니다. 핵심인 자신은 가만히 있고 꼬리만 잘라왔습니다. 그랬던 그가 스스로 자신과 가족들의 예우를 바랐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지금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남양유업의 임직원들입니다. 여전히 최대주주인 홍 회장과 오너 일가의 그릇된 사고와 욕심, 이기심 탓에 남양유업은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 회장은 자신과 가족들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양유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홍 회장의 우산이 돼주었던 그들을 외면한 채 말입니다. 예우는 어려울 때 우산이 돼 준 그들이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예우입니다.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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