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벌레잡이풀·벌집 닮은 표면이 '바이러스' 잡는다

창원=조혜인 기자 2021. 10. 30. 09: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표면공학의 세계
독특한 방식으로 바이러스 입자를 포집하는 3차원 표면 구조를 개발한 조영태·김석 창원대 기계공학부 스마트제조융합전공 교수. 의료원과의 협업으로 연구의 정밀성과 실용성을 강화했다. 남윤중 제공

2019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발생 이후 과학계가 분주해졌다. 과학자들은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앞장섰고, 직접 접촉 외에 감염자의 물건을 만져 발생하는 2차 감염을 막기 위한 노력도 잇따랐다. 근본적으로 바이러스를 죽이는 생화학적 연구부터 물리적으로 접촉을 차단하는 연구까지 과학계 각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가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특한 방식으로 바이러스 입자를 포집하는 3차원 표면 구조가 개발됐다. 해당 표면 구조는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과의 협업으로 연구의 정밀성과 실용성을 강화했다. 이로써 감염성 병원체가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기능성 필름 개발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연을 모사한 표면 공학

자연은 수십억 년의 역사를 거치며 시행착오를 통해 진화했다. 인간은 이렇게 살아남은 자연의 모습과 구조, 특성에서 영감을 얻어 그와 유사한 도구를 만들어 생존하고 있다. 특히 생물체가 지닌 고유의 표면 구조는 실생활부터 반도체, 항공 등 첨단 분야까지 폭넓게 응용되면서 인류 생존을 위한 중요한 기술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예가 매미의 날개 구조다. 2018년 일본 간사이대 연구팀은 말매미의 날개 표면에 지름 0.2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 이하의 가느다란 돌기가 규칙적으로 돋아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를 모방한 항균 시트를 개발했다. 시트에 대장균이 포함된 액체를 붓고 실험한 결과, 약 15분 후 대장균이 모두 사멸했음을 확인했다. 특유의 돌기 구조에 의해 세포배액이 분출되며 균이 사멸한 것이다.

수생식물인 연꽃도 독특한 표면 구조로 유명하다. 연꽃은 잎 표면의 구조가 발수성을 갖는 독특한 형태로 이뤄져 있어 잎이 물에 젖지 않는다. 수 μm 크기의 돌기까지 있어 표면에 오염 물질이 묻어도 금세 물방울에 씻겨 내려간다.

과학자들은 이런 연잎 효과(초 발수성 효과)를 이용해 방수 섬유, 빗물에 젖지 않는 우산 등을 개발했고, 미세 돌기 구조를 이용해 끈적끈적한 꿀이 뭉쳐 잘 떨어지는 숟가락, 물과 오염 물질을 털어낼 수 있는 옷도 만들었다. 물에 닿아도 고장 나지 않는 컴퓨터 메모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표면 구조는 생체 이식 부작용 줄이는 표면 개질, 반도체 공정, 신촉매 개발, 인쇄판 가공 등에서 연구되고 있으며, 이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바이러스 전파 막는 구조

표면 구조 연구는 바이오·의료 분야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이후 쓰임새는 더 커졌다. 호흡기로 전파되는 바이러스 대부분은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비말(침방울)을 통해 전염된다. 이때 일부 비말은 창문, 책상, 엘리베이터 벽면 등 물체의 표면에 묻게 된다. 바이러스 감염자의 비말이 묻은 물체에 접촉해 발생하는 간접접촉으로 인한 감염은 발생 확률은 낮지만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표면 구조를 연구하는 공학자들은 바이러스를 비롯해 세균 등 유해물질의 전파를 막는 방법을 찾고 있다. 지난 5월 인도 뭄바이대 연구팀은 침방울의 박막이 쉽게 붕괴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 바이러스가 빨리 죽는 표면 미세구조와 접촉각을 제시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연구가 활발히 진행중이다. 조영태, 김석 창원대 기계공학부 교수팀이 그 주인공이다. 연구팀은 물체 표면에 묻은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포집해 다시 묻어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포집한 바이러스를 사멸시킬 수 있는 표면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올해 8월 연구팀은 얇은 필름의 미세 표면 구조를 3차원 형태로 설계해 바이러스가 포함된 비말 등 작은 액체가 자발적으로 갇히는 방법을 개발해 나노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ACS 나노’에 게재했다. 

김석 교수는 “자연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표면 구조를 설계했다”며 “(이 구조로 만든 필름을 물체에 입힌다면) 바이러스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포집돼 접촉에 의한 전염을 막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발적으로 블랙홀에 갇힌 바이러스

벌레잡이통풀은 식충식물로 파리 등 벌레를 잡아먹고 산다. 이 식물은 표면을 미끄럽게 만들어 벌레가 앉으면 미끄러져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어 가둬버린다. 연구팀은 이 벌레잡이통풀의 모습에서 미세 비말을 포집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연구팀은 액체 방울을 가둘 공간을 만들기 위해 3차원의 벌집 모양과 쐐기 모양 등 두 가지 패턴을 설계했다. 김 교수는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미세 액체가 미리 설계한 구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갇혀서 나오지 않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물기가 마른 뒤에 미세입자가 원하는 곳에 몰리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액체가 증발해 마를 때는 액체가 떨어진 표면의 성질에 따라 주변에 퍼져서 마르는 경우가 있고, 서로 뭉치는 방식으로 마르기도 한다.

연구팀은 물이 마를 때 액체 속에 든 미세입자가 바깥쪽으로 몰리며 표면에 고리 모양을 남기는 현상인 ‘커피링(고리) 효과’를 이용했다. 연구팀은 발수성 표면을 적용해 이를 구현했고, 이로써 표면에 묻은 물방울이 증발하고 난 뒤 남은 미세입자가 안쪽에 파인 홈 내부에만 모여 갇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김 교수는 “원하는 방향으로 입자를 몰기 위해 입자 자체를 조절한 게 아니라 물방울이 마르는 모양을 조절했다는 점에서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연구팀은 물기가 마르면서 비말이 돌돌 뭉치며 원하는 방향으로 미끄러지고, 손에 닿지 않는 골에 포집되는 표면을 제작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두 가지 표면 구조에 수 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크기의 바이러스를 모사한 나노입자 및 아데노바이러스 입자를 이용해 실험한 결과 벌집 모양은 93%, 쐐기 모양은 96%까지 입자를 가뒀다.

사람의 손이 표면에 닿았을 때 접촉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질병관리청의 승인을 받아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로 추가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실험에 사용한 나노입자 및 아데노바이러스 입자와 크기가 거의 비슷해 비슷한 효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조영태 교수는 “사람 손이 표면을 만져도 바이러스 입자가 갇혀 있어 사람 손에 닿지 않는다”며 “생물학적, 화학적인 방법으로 바이러스 자체를 제거하려는 연구는 기존에 많았지만, 물리적인 방법으로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 시도되는 연구”라며 연구 의의를 밝혔다.

창원대는 올해 공과대학 부속 공장을 리모델링해 스마트팩토리로 구축했다. 이곳에 최신 제조 장비를 갖추고 3차원(3D) 표면 구조 기술, 디지털 트윈 등의 첨단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남윤중 제공

공동연구로 병원, 공공시설 등에서 실질적 이용 기대

실생활에 쓰일 수 있는 제품을 연구하는 만큼, 학문적 연구에 국한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쓰일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창원대 연구팀은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세균에 대해서도 실험을 확장하면 병원, 공공시설 등 보다 다양한 곳에서 실용적으로 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를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의 힘이 필요했다. 이에 연구팀은 창원대 생물학화학융합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EUMC)과 함께 표면 구조 설계와 바이러스 접촉 전파 실험을 수행했다. 조 교수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해 기술의 완성도를 높인 덕에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바이러스와 세균 전파가 민감한 병원에서 필요성이 큰 만큼 이대 의료원과 추가 연구를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이응만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겸 정밀의료센터장은 “각 분야에서 정통한 전문가라도 본인 전문 분야 외에선 다룰 수 있는 기술, 인프라 등의 한계가 있다”며 “이는 반대로 각 분야의 접점만 잘 연결하면 연구결과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창원대의 기계공학 전문가들과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의학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하여 독창적인 연구를 빠르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며 “그 결과 적은 시행착오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창원대 기계공학부 연구팀은 초기 미세입자 포집이 연구의 목적이었다면,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에서는 바이러스의 생존 지속 시간과 안정적인 포집 여부 등, 연구의 방향을 현재 의료분야의 난제로 연구방향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며 “서로 다른 분야 전문가들이 협업하면 각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에 몰두할 수 있어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다”며 협업의 의의를 밝혔다. 

이 센터장은 지난 2017년 니콜라스 팡 MIT 기계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나노광공학 및 3D나노프린팅 기술 연구실에서 김 교수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각자의 분야에서 활약하던 세 연구자는 이번 연구 아이디어를 통해 다시 뭉쳤다. 

이 센터장은 현재 통용돼 쓰이는 항바이러스 필름의 문제점도 지목했다. 최근 엘리베이터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항바이러스 필름은 구리와 같은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으나, 바이러스 오염 정도나 생존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센터장은 “연구를 지속해 바이러스나 세균의 감염을 막을 뿐만 아니라 오염 정도, 바이러스 생존 여부 등을 파악해 교체 시기까지 알려주는 필름을 개발하고 싶다”고 밝혔다. 

조인호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분자의과학교실 교수 겸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장은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을 엮는 데 부담이 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입원실, 수술실 등 병원의 다양한 공간에서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박테리아 감염관리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해당 연구를 통해 기존의 의료분야 감염관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했고 창원대와 MIT 연구진과 함께 현재 전 인류의 난제인 코로나바이러스 전파억제에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이번 연구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에서는 바이오, 의료용 기술 개발과 관하여 다양한 분야의 분들과 함께 산학연병 협력에 힘을 쏟고 있다“며 ”이번 창원대, MIT,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간 협업 연구의 성공적인 사례를 통해 공학과 의학분야간 융합연구가 기초연구에서 실용화까지 가속화될 수 있는 모범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공동연구를 진행한 이응만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EUMC)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겸 정밀의료센터장(오른쪽)과 조인호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분자의과학교실 교수 겸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장의 모습. 이서연 제공

실용화에 한 발 짝 더 가까이

연구팀은 실제로 창문 면적에 붙일 커다란. 대면적 필름을 제작하기 위해 권신 한국기계연구원 연구원팀과도 협업했다. 그리고 현재 이들과 함께 1200mm 폭에 표면 구조 패턴을 새길 장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 교수는 “폭 1200mm 필름 위에 초발수 성능을 가지며 바이러스도 포집하는 패턴을 제조할 수 있는 롤투롤 장비는 세계 최대 규모일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에 함께 참여한 박사과정생들 또한 스타트업을 창업해 마이크로 패턴 제조 공정을 대면적화할 수 있는 기술과 장비를 연구 개발 중이다. 조 교수는 “산업부 스마트제조 고급인력 양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한 만큼 인적 교류와 인력 양성도 신경 쓰고 있다”며 “이번 연구를 통한 학생 창업은 산학 협력 측면에서도 우수한 사례로 꼽힐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특정 바이러스를 없애는 화학적 작용이 아닌 물리적 공정으로만 구성돼 응용 분야가 다양하다. 3차원 구조를 이용한 만큼 구조를 목적에 맞게 변형할 수 있는 유연함이 있어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다. 조 교수는 “병원체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포집을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라며 “현재 물방울이 떨어지면 먼지를 머금고 굴러가며 씻겨지는 자가 세정 표면 구조를 함께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최근 태양전지 표면에 새똥이 쌓여 논란된 적이 있었는데, 이런 표면 구조를 이용하면 따로 관리하지 않고 태양전지 등도 대규모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대 스마트팩토리 안에 있는 필름에 패턴을 새겨 프린트 할 수 있는 장비 앞에서 조영태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와 김석 교수(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연구팀과 함께 있다. 장비에 달린 4개의 카메라를 통해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남윤중 제공

※관련기사

과학동아 11월호, [엣지 사이언스] 벌레잡이풀·벌집에게 배운다, 바이러스 잡는 ‘표면 공학’

[창원=조혜인 기자 ]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