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불안이 만들어내는 착각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을 때면 쉴 때도 마음 언저리가 불안해서 쉬는 것 같지 않을 때가 있다. 물론 불안하다고 해서 지금 일을 할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놀자니 왠지 찔려서 논 것도 아니고 일한 것도 아닌 애매한 휴식을 취하게 될 때가 적지 않다. 바쁘기 때문에 주어진 휴식시간 만큼은 마음 편히 아무 생각 없이 쉬면 좋을 텐데, 소중한 휴식 시간에도 마음은 여전히 쉬지 못한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주로 완벽을 향한 소망이 강한 완벽주의자들이 보이는 현상이다. 이들은 충분히 잘 하고 있으면서도, 예컨대 90점을 해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기보다 만점에서 10점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더 바들바들 불안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족함을 없애는 것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열심히 잘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여전히 10점, 5점, 1점이 미달이라며 죄책감을 느낀다.
'완벽'을 추구할수록 본인이 얼마나 달성하고 있는지보다 아직 얼마나 '부족'한지에 더 많이 초점을 맞추고 남보다 더 열심히 하면서도 계속 불안하고 자신이 뭔가 잘 못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들은 자신은 실은 주변 사람들에 비해 실력이나 자질이 떨어지는 가짜인 것 같다고 느끼는 '임포스터 신드롬'을 더 많이 느낀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대 멜리스 무라돌루 교수에 따르면 여성이, 유색인이 남성이나 백인들에 비해 자신이 충분히 잘 하고 있지 못하다는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의심, 자신이 사실은 '가짜' 같다는 임포스터 신드롬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는 눈에 띄는 뛰어난 재능이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생각할 때 더 “사람들이 내가 실은 얼마나 무능한지 알아볼까봐 두렵다” 같은 반응을 많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력과 지위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보다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더 임포스터 신드롬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완벽주의와 지나치게 높은 기준, 스트레스, 임포스터 신드롬은 함께 붙어 다니는 경향을 보인다. 커리어를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의 경우 어느 성취해야 충분한지 알지 못하고, 또한 아직 안정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므로 최대한 부족함을 없애야겠다는 강박과 무능한 모습을 최대한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임포스터 신드롬)들이 많은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 한편 여성과 유색인이 이런 불안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것은 사회에서 이들에게 들이미는 기준이 더 빡빡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조금만 실수해도 아웃이라는 불안이 크고, 아마 실제로도 실수의 허용 범위가 남성·백인에 비해 여성과 유색인에게 더 좁기 때문에 이들에게 이런 불안이 더 클 것이다.
예컨대 남성이 실수를 하면 실수를 했군 하고 넘어가지만 여성이 실수를 하면 “이래서 여자는 안 돼”라는 광범위하고 수정 불가능한 귀인을 한다든가, 또 감정 조절이 안 돼서 화를 냈을 때, 남성이 화를 내면 화가 날 만한 일이 있었겠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이 화를 내면 또 예민하게 군다며 개인의 미성숙함으로 치부한다는 연구들이 있다. 또 아직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취업 시장에서 여성은 큰 불이익을 받고 있다. 이런 팍팍한 현실이 개인적 수준에서 완벽에 대한 강박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이런데도 완벽주의는 많은 학자들이 언급한 바 행복과 건강에의 '독'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 치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압박이 클수록 일단 그런 목표는 달성할 수 없음을 인식하도록 하자.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걸음걸음 실패를 쌓아가는 행위다. 또 부족함을 없애는 데 치중하는 것 못지 않게 지금까지 잘해온 것, 부족함 반대편에 있는 나의 성취들에도 동일한 관심을 갖도록 하자.
내가 가짜인 것은 아닐까 사실 나는 형편없이 부족한 인간이 아닐까 하고 자신을 의심할 때면 내 동료들도 어느 정도 이런 불안을 가지고 있을 것임을 인식하도록 하자.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또 부족함을 감추고 싶은 마음이 큰 나는 확률적으로 이미 부족함을 감추고도 남을 만큼의 성과를 냈을 것이며, 내 부족함 또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현격히 작을 것임을 기억하도록 하자.
불안은 부족함만 콕콕 찍어내서 확대하는 돋보기다. 크고 생생해 보여서 진짜 같이 느껴지지만 그것들은 불안이 만들어내는 착각일 뿐 실제와는 다르다. 불안할 때 내 마음이 하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똥'인 것이다. 또 내 삶은 내가 불안해하는 영역보다 훨씬 크다. 어떤 하나가 삶의 전부라고 느끼는 것은 높은 확률로 착각이다.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고 삶을 균형있게 바라보는 한 주가 되길 바란다.
※관련기사
Muradoglu, M., Horne, Z., Hammond, M., Leslie, S. J., & Cimpian, A. (2020). Women—particularly underrepresented minority women—and early-career academics feel like impostors in fields that value brilliance.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https://doi.org/10.1037/edu0000669
Cowie, M. E., Nealis, L. J., Sherry, S. B., Hewitt, P. L., & Flett, G. L. (2018). Perfectionism and academic difficulties in graduate students: Testing incremental prediction and gender moderation.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123, 223-228.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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