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공항의 악몽이..예타면제 새만금공항 '기대반 우려반'
[편집자주] 국회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권한을 기획재정부에서 각 사업 부처로 넘기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이 방안대로면 사실상 예산당국의 견제없이 이른바 '묻지마'식 사업이 가능해진다.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1999년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고지원 300억원 이상 사업 등에 도입된 예타 제도가 운명의 기로에 섰다.
이용률이 저조해 한때 '유령공항'으로 불렸던 곳들의 별칭이다. 울진공항의 경우 오지인 탓에 도로나 철도 교통이 불편해 공항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추진됐다. 당시 실세였던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이 강력하게 울진공항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김중권공항으로도 불린다.
울진공항은 1320억원을 투입해 건설이 확정됐지만 비행기를 띄우겠다는 항공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수년간 개항을 미루다가 결국 현재는 비행훈련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제공항은 국토부가 김제시 공덕면에 보잉 737급 여객기 3대가 이용할 수 있는 공항을 2007년까지 완공할 계획이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전체사업비 1474억원 중 부지매입비 396억원을 포함한 480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수요가 과다 예측됐다는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라 현재는 추진이 중단된 상황이다.
2000년에 380억원을 들여 여객터미널을 신축한 예천공항은 고향이 예천으로 6공화국의 실세였던 유학성 전 의원이 강력 추진해 '유학성 공항'으로 불렸다. 하지만 터미널 신축 4년만인 2004년에 문을 닫게됐다. 예천 주변을 지나는 중앙고속도로가 뚫리면서다. 이미 중앙고속도로는 터미널 신축 이전부터 공사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한 채 공사를 강행했다.
모두가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치지 않고 건설이 추진된 공항들이다. 이같은 유령공항은 공공투자사업에서 예비타당성조사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사례들이다.
예타가 무너지면 제2의 유령공항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밀한 수요예측을 토대로한 사업성이 담보돼야 세금낭비를 막을 수 있고 선심성 사업을 가려낼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새만금공항도 예타가 면제되면서 우려를 낳고있다. '항공 오지'인 전북에 지역균형발전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반면 예비타당성조사도 거치지 않아 아무도 찾지 않은 '유령공항'의 전철을 밟게될 것이라는 우려다.
정부가 새만금공항을 예타면제 사업으로 지정한 이유는 사업성은 나오지 않아 예타를 통과하기 힘들지만 지역균형발전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새만금공항 항공수요조사를 실시한 결과 새만금공항을 2025년에는 연간 67만명, 2045년에는 100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 내부적으로도 예타를 면제해주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렵다고 본 사업에 대해 수요를 과다하게 예측한 셈이다. 수요조사대로라면 기재부에서 실시한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쳤더라도 비용대비 편익(B/C)값이 1을 넘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예타 권한이 재정당국이 아닌 관할부처로 이관되면 제대로된 심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낸다.
하지만 예타 권한의 주체가 문제가 아니라 예타 평가분석 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KTX 여수엑스포역과 강릉역은 효율성 중심의 현행 예타 제도가 지역균형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KTX 강릉역은 올림픽 예산 중 가장 많은 액수인 3조941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이었지만 평창동계올림픽 특별법에 따라 예타가 생략된 채 추진됐다. 여수엑스포역 역시 여수세계박람회에 맞춰 예타가 생략된 채 추진됐다.
당시에는 올림픽이나 엑스포가 끝난 끝난 후 철도이용률이 떨어져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난해 누적이용객이 1000만명을 돌파했고 강릉은 KTX를 통해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더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 됐다. 인프라가 수요를 창출한 것이다.
◇1999년 국내 도입 후 2006년 국재재정법으로 법제화
예비타당성조사(예타)는 대규모 신규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사전 타당성 검증해 재정효율성이나 사업성을 평가함으로써 예산낭비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최초로 예타 제도가 도입된 것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9년 4월이다. 정부가 '공공건설사업 효율화 종합 대책'을 발표했는데, 여기 예타제도 도입안이 포함됐다.
예타 제도 도입 이전에는 각 부처가 주관하는 타당성조사에 근거해 예산편성이 이뤄져왔다. 그러나 사업을 담당하는 부처가 타당성조사를 주도하면서 신뢰성 문제가 부각됐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98년 기획예산위원회(현재 기획재정부로 통합)와 건설교통부(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공공사업효율화추진단'이 구성됐다.
이후 2004년 '총액배분 자율편성'(Top-Down) 제도가 도입됐다. 예산당국이 사전에 분야별·부처별 지출한도를 각 부처에 통보하면 부처별로 지출한도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부처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살려 예산편성의 효율성을 기여하고, 재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자율성 확보 효과는 미미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기재부가 각 부처의 모든 세부사업에 대해 사업추진여부, 예산 규모의 적정성을 재검토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2년 뒤인 2006년 국가재정법이 제정되면서 제도가 정식으로 법제화됐다. 예타 대상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건설공사가 포함된 사업, 지능정보화 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으로 명시됐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예타 과정에 지역간 균형발전과 다양한 사회적 가치 실현, 경제·사회적 여건 변화가 반영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따라서 지방균형 안배를 위한 개편이 이뤄졌다.
2019년 기재부는 종합 평가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가 비중을 다르게 적용하는 안을 내놨다. 비수도권의 경제성 평가 비중을 5%포인트(p) 줄이는 대신 지역균형발전의 비중을 5%포인트 늘렸다. 평가비중은 사업유형별로 경제성(25~50%), 정책적 타당성(25~75%), 지역균형발전(25~35%) 등이다. 수도권의 경우 경제성(60~70%)과 정책성(30~40%)만으로 평가한다.
또 예타 조사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에 따라 조사기간 단축방안도 도입됐다. 예타사업 신청 전 사업 주무부처의 사전준비 절차를 강화해 자료요청·제출 시기 단축했다. 또 예타 조사기간을 1년 이내로 단축(철도는 1년 6개월)하기로 했다.
◇예산 총액 주고 맡기는 美·英
예산당국이 예타 권한을 쥐고 각 부처의 개별 사업을 좌지우지해온 우리나라와 달리 주요 선진국들에선 세부적인 사업별 예산은 각 부처가 알아서 판단한다. 이른바 '총액배분' 방식을 통해서다.
연방제국가인 미국의 경우 교통 관련 등 건설사업에 대해 연방정부가 예산 총액을 각 주로 나눠주면 주 정부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집행한다. 각 연방부처와 기관들이 독자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형태다. 구체적으로 각 지역의 광역계획기구(MPO)는 4년 단위의 단기교통개선계획(TIP)을 수립하는데 이때 우리나라의 예타와 비슷한 사전타당성 평가 등의 과정을 거친다.
영국도 각 부처에서 부처별 총량 내에서 자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총액배분·자율편성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신 사업 계획은 이른바 '관문심사제도'를 통해 단계별로 관리한다. 각 단계에서 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사전평가제도를 운용하지만, 부처별 평가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 소관부처에서 사전 평가를 시행하고 타당성이 확보된 사업에 대해 예산을 신청하는 일괄예산 신청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정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가 해외 주요국들과 달리 중앙예산기관이 직접 예타를 수행하는 것은 예산 편성 과정 전반에서 부처의 자율성보다는 중앙예산기관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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