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를 만나고..좋아하던 삼겹살이 불편해졌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지금 내 앞에서 움직이는 건, 살아서 숨 쉬는 돼지였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도살돼 죽은 뒤 고기로 요리가 되어 식탁에 놓여있는 것만 봤었다.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삶이 어땠는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소비자는 알 수 없었다. 하긴, 그래야만 먹을 때 마음이 편했으리라.
처음 만난 그 돼지의 이름은 '새벽이'였다. 작고 살짝 처진 눈은 편안히 정감이 갔고, 무화과를 닮은 귀는 끝이 쫑긋하면서 컸다. 하얀 털에 몸은 큰 편이었고, 분홍빛으로 물든 코는 둥그스름했다. 흙장난을 쳤는지 코 주변이 진한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성격이 다 다르다고 했다. 새벽이는 어떠냐고 물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단다. 특히 남성을 무서워한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조금 떨어져서 쪼그리고 앉았다. 눈높이를 맞추고 싶었다. '난 인간이고 너처럼 동물이야. 처음으로 널 알고 싶어서 왔어. 불편했다면 미안해.' 속으로 그리 말했다.
새벽이는 옆으로 곧게 서서 곁눈으로 날 바라봤다. 잘은 모르겠으나 두려움과 호기심이 함께 느껴졌다. 나도 가만히 앉아 새벽이를 바라봤다. 첫인사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관계를 맺으려면 시간이 필요한 거니까, 천천히 다가가야지 싶었다.

종돈장에서 태어나 6개월 만에 고기가 될 운명이었던 새벽이가, 어느덧 두 살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한해 약 1832만 마리의 친구들이 도축될 때(2020년 기준) 구조돼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게 2019년 7월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선 돼지가 '고기'가 아닌 '생명'으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새벽이를 공개 구조한 동물권단체 직접행동디엑스이(DxE)코리아 활동가들이 평생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줬다.
어렵사리 생존한 농장동물 새벽이의 안식처, 그걸 '생추어리'라 불렀다. 거기에 살게 된 새벽이의 이름을 붙여 '새벽이생추어리'가 생겼다. 그런 곳은 우리나라에선 아예 처음이었다. 거기에 제약회사 실험동물로 죽을뻔했던 '잔디'가 지난해 구조돼 새벽이와 함께하게 됐다.
난 돼지고기를 먹는다. 돼지와 고기는 내게 연결된 한 단어였다. 그런데 실은, 돼지고기는 원래 돼지였다. 그러나 우린 돼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러니 도살되지 않고 자연에서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돼지의 삶을 보고 싶었다. 그걸 알려 함께 생각해봤으면 했다.
그래서 새벽이생추어리로 가서 '보듬이'로 활동해봤다. 여기선 새벽이와 잔디를 돌보는 일을 봉사란 말 대신 보듬이라 부른다. 시혜적으로 돕는 게 아니라 같은 동물끼리 연대하잔 의미다. 덧붙이면 '보듬다'는 말은 '사람이나 동물을 가슴에 붙도록 안는다'는 뜻이다.

수풀 사이로 땅 내음을 맡으며 부지런히 총총 걷던 잔디와 처음 만났다. 잔디는 눈이 동그랗고 눈 주변이 회색빛으로, 등에 동그란 무늬가 있는 게 매력적이었다. 체형은 어쩐지 나와 비슷해서 약간 친근했다. 원하는 곳으로 자유로이 다니는 모습이 좋았다.

킁킁거리며 다니던 잔디가 날 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어떻게 봐줄까 싶어 살짝 긴장됐다. 몸을 한껏 낮추고 오른손을 내미니 구석구석을 흠흠, 하고 탐색하며 냄새를 맡았다. 그제야 "잔디야, 안녕"하고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쿨하게 뒤를 돌아 다른 곳으로 시원스레 걸어갔다.
짧게나마 관계의 시작인 첫인사를 마쳤다. 소소하게나마 닿은 것 같아 괜찮은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린 이렇게 서로 바라볼 수도 있었구나', '그런데 관계가 단절돼 있었구나'하고.

죽을뻔한 곳에서 살아 돌아왔단다. 그 주체는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 그러니 그와 비슷하게 생긴 날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새벽이에게는 인간에게 폭력을 당한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꼬리가 잘려있었다. 송곳니는 뽑혀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그렇게 된 거라고 했다.

새벽이가 있던 종돈장의 스톨(케이지)은 아주 좁았다. 엄마 돼지 한 마리가 옆으로 눕거나, 앉았다 일어났다만 할 수 있는 크기였다. 거기서 어린 새벽이와 형제들까지 따닥따닥 붙어살았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의 귀와 꼬리를 물까 싶어 꼬리와 송곳니를 그리 만든 거란다. 간단하고 폭력적인 방법이었다.

활동가들이 새벽이를 구하러 간 건 한여름이었다. 가보니 종돈장 건물엔 작은 창문 하나 없었다. 찜통처럼 더웠고 악취가 진동했다. 거기에 생후 2주 차였던 자그마한 새벽이와, 이미 숨진 아기 돼지들의 사체며 오물이 뒤엉켜 있었다. 아픈 새벽이와 노을이가 병원에 갔으나 새벽이만 살아남았다. 별이는 종돈장에서 이미 죽어 있던 걸, 활동가들이 데리고 나와 장례를 치러줬다.

짐작하기 힘든 시간을 다 견디고 온 새벽이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이빨이 약한 잔디는 잘게 썰어서 줘야 한다고 했다. 도마에 올려 채소들을 서걱서걱 먹기 좋게 썰었다. 잔디는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게 덜 좋아하는 음식부터 차례차례 밥을 챙겨준다. 무모 활동가는 "그런데 콩나물만 주고 다른 걸 안 주면 단단한 코로 다리를 엄청 민다"며 "작아서 힘이 약할 것 같지만 아주 세다!"고 했다.
정성스레 마련한 저녁 식사를 들고 잔디에게 갔다. 잔디는 금세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위로 쑥 올리고, 빨리 달라는 듯 날 바라봤다. 내려놓은 뒤엔 다 먹을 때까지 밥그릇을 잡아줬다. 앞발로 움직여서 쏟을 때가 있어서 잘 봐야 한다고 했다.

잔디는 보는 이가 허기가 밀려올 만큼, 찹찹하고 맛있게 밥을 먹었다. 마냥 뿌듯하지 않았던 건, 이어 잔디가 '찐삼이(고구마, 단호박, 비트)물'을 먹는 모습을 봐서였다. 무척 좋아하는데도 바로 입을 대지 못하고, 고개를 허공에서 빙빙 돌린 뒤에야 먹었다.
그 또한 제약회사로 추정되는 곳의 실험동물로 있던 잔디가, 스스로 탈출하다 머리를 다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물병원서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이 느려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했었단다. 그러다 구조돼 새벽이생추어리로 오게 됐다.
잔디가 머리를 계속 돌리고 먹고를 반복하는 동안, 천천히 먹을 수 있게 그릇을 오래도록 잡아줬다. 그렇게 함께해주면 되는 거였다.

새벽이는 밥을 다 먹은 뒤에 코로 땅을 파며 흙내음을 흠뻑 맡았다. 잘 몰랐을 땐 '내가 사진 찍어서 화났나' 싶기도 했었다. 그게 아녔다. 누리 활동가는 "루팅이라는 돼지의 습성이다. 굴삭기가 이걸 본떠서 만든 기계"라고 설명했다. 산책할 때 땅을 파고 풀을 뜯으며 스트레스를 푼다. 풀도 아무거나 먹는 게 아니라, 잘 들여다보면 환삼덩쿨, 쇠뜨기처럼 골라 먹는 풀이 있다.

기분이 편안할 땐 너그럽지만, 배고프다거나 졸리거나 밥 먹을 때 건드리는 건 싫어한다. 특히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한 번은 새벽이 안방(자는 곳)을 정리하려 누리 활동가와 작전을 짰다. 누리 활동가가 새벽이의 이목을 끄는 사이, 내가 들어가는 거였다. 그런데 문을 딸깍, 하자마자 새벽이가 달려와서, 나도 모르게 "새벽아, 미안해"하며 황급히 나왔다. 돼지가 그렇게 빠른 줄 몰랐다.
돼지라고 다 같은 취향인 것도 아니다. 새벽이는 진흙 목욕을 좋아한다. 잔디는 자외선 차단을 위해 황토를 발라주려 할 때, 축축하고 차가운 것이 닿으면 '꽤애액'하고 싫다는 소릴 낸다. 어르면서 계속하면 후다닥 도망간다고. 졸졸 쫓아가면 "하지마!" 하듯이 뒤돌아보며 컹, 하기도 한다. 음식만 해도 새벽이는 쥬키니를 잘 먹지만 잔디는 잘 안 먹고, 새벽이는 상추를 먹지 않지만 잔디는 잘 먹는다.
새벽이답게, 잔디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니 새삼 고유한 존재로 보이는 거였다. 실은 모든 동물이 다 그렇듯이.

하루는 새벽이 집 울타리를 다시 쳐야 한다고 했다. 조금 더 먼 위치로 옮긴다는 거였다. 자세한 이유를 밝힐 순 없으나, 결국엔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밀려나는 거였다. 울타리엔 새벽이가 보이지 않도록 천을 덧대야 했다. 이 드넓은 세상에서, 어렵게 허락된 작은 땅마저도, 이리 쉽게 위협받을 수 있는 거였다.
그 과정에서, 울타리 설치를 해주러 온 일꾼은 새벽이를 가리키며 "저렇게 큰 돼지는 양돈장에서도 안 데려간다"며 웃기도 했다. 돼지는 인간을 위해 질 좋고 양 많은 고기로만 존재해야 한단 인식이 지배적인 세상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러니 인간의 근처에서 새벽이가, 잔디가 맘 놓고 풀을 뜯는 그 광경도 조마조마하고 불안해졌다.

보듬이를 위한 사전 교육에서 새벽이와 잔디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비유한 내용이 있었다.
"만약에 이 세상에 인간들이 다 죽고, 기자님만 살아남았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곳이 지상낙원일까요?"
그에 대해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고기가 아녔다. 살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편히 먹었던 거였다. 새벽이와 잔디는 우리처럼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다 있었다. 공장식 축산의 거대한 바퀴 속에서, 대량으로 사육되다 110킬로그램까지 얼른 먹고 싸고 몸집을 키운 뒤, 6개월 만에 도살되는 건 전혀 당연한 게 아녔다.

그러니 새벽이생추어리에선 새벽이와 잔디를 '활동가'라 불렀다. 본연의 모습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인간 동물에게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기에. 두 활동가는 매일의 일상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들에게, 그들과 비슷한 존재들에게 인간이 가하는 진짜 폭력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새벽이와 잔디가 오래 살아남아 많은 이들이 불편해졌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고기로 죽지 않고 살았을 때 이렇게나 아름답다는 게 불편했으면 좋겠다고. 그걸 넘어 동물과 동물로서 언젠가 맘 편히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폭력 위에 지은 좁다란 생추어리가 아닌, 드넓고 아름다운 지구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좀 더 느긋이 즐겼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돼지의 평균 수명인 15년이, 동물과 동물이 친한 친구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란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새벽이와 잔디가 늙어서 떠나는 날, 슬퍼서 함께 울었으면 좋겠다. 보듬이 활동을 하다 누리 활동가가 내게 물었다. "제가 할머니가 될 때쯤엔 그래도 나아지겠지요?" 내가 대답했다. "그럴 거라고 믿어요."
거기에 한 걸음이라도 잘 보태기 위해, 이 글을 꾹꾹 눌러서 쓰고 있다.

에필로그(epilogue).
지난해 7월 9일은 새벽이의 첫 번째 생일이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세상에서, 어렵게 1년을 살아내었다. 그날, 새벽이는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만들어준 수제 두부 케이크를 먹으며 축하를 받았다. 뒤뜰을 걸으며 햇살과 바람, 반짝이는 여름의 빛깔을 만끽했다.
이어 지난해, 새벽이가 처음 맞았던 겨울엔 뜻밖의 일이 생겼다. 추위는 잘 견뎠으나, 왼쪽 앞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한 거였다. 새벽이는 약을 먹고 현재는 절뚝거리지 않고 있다. 활동가들은 다리가 약한 새벽이를 항상 주의 깊게 살피며 식단 관리를 하고 있다.
당시 새벽이가 절뚝거렸던 이유에 대해, 대동물 수의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점점 커지는 몸을 새벽이 다리가 지탱하기 어려웠을 거예요."(수의사)
"왜 그런 걸까요?"(활동가)
"6개월 이상 살 거라고, 생각하고 개량된 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수의사)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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