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의 사실과 진실, 그리고 언론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2021. 10. 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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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대선 판이 본격화되면서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정치권의 움직임이 소개되고 있어 정치권은 당선이라는 지상목표를 향해 가동할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정치권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 든 사실과 진실을 구분해서 정치적 행동을 하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언론이다. 언론은 사실과 진실을 동시에 제시해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점에서 제 4부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언론이 만약 사실과 진실을 정치권처럼 분리해서 할 일 다 했다는 식이면 제 4부의 자격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 언론은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대단히 실망스럽다. 첫째, 오늘날 언론은 이른바 정치인의 입만을 주시하거나 녹취록을 중계방송하기 바쁘다. 정치인의 말이나 녹취록은 사실일 수 있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여부는 판단키 어렵다. 특히 정치인의 말이나 전체 녹취록 가운데 일부분만을 공개하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번 선거는 여야 유력후보 두 사람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어 있어서 정책 공약보다 그 수사와 진실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대장동 특혜사건의 경우 녹취록이 최고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어 주목된다. 대장동 특혜와 관련된 인물들이 녹취록을 앞세운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언론이 대단히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녹취록을 내놓거나 인터뷰를 언론에 자청하는 사람들이 언론보도의 abc를 잘 아는 이른바 '선수'일 경우 언론이 그 프레임에 갇혀 사실과 진실을 혼동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탐사보도를 중시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다 하겠다. 언론이 받아쓰기나 중계방송을 하는 식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런 약점은 언론을 이용하려는 세력에 의해 최대한 악용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 9월29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경기도 성남시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 입구 모습. 검찰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의 특혜 의혹을 받는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와 관련자들의 사무실·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 연합뉴스

두 번째는 방송사의 정치관련 대담프로다. 지상파, 공중파할 것 없이 현안에 대한 여야 정치인이나 그 쪽 출신들을 대담자로 앉혀놓고 발언하도록 하는 형식이다 보니 제 각각 자신의 정치적 소속 집단의 시각에서 가공된 정보만을 주로 이야기 하게 된다. 대단히 복잡해서 갈피잡기 어려운 난제일 경우 특정 정당의 공보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보만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사실을 열심히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대한 결론은 제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니 그 프로를 시청한 일반시청자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거나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확증편향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

언론이 사실과 진실을 동시에 보도하는 것이 오늘날 더 중요시 되고 있다. 정치권이나 사법기관 등이 언론의 속보경쟁 체질을 이용하거나 특정 프레임을 제시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편향되거나 오도된 정보를 양산할 경우 언론이 이에 휘말리고 그로 인한 피해는 막중할 것이다. 언론이 제 4부의 위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언론의 속성을 꿰뚫는 세력에 의해 이용당할 경우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정치권력 등이 의도적으로 사건 사고를 어느 방향으로 몰아가려 할 경우 그것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또는 그래야 하는 주체가 바로 언론이다.

세 번째 언론이 경계해야 할 것은 가짜뉴스의 범람이다. 가짜뉴스는 미국 등의 큰 선거에서 이미 확인되었듯이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양산되고 있다. 가짜뉴스의 개념을 넓게 잡을 경우 언론이 경계해야 할 대상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 때문에 미국 주요 언론은 대선과 같은 큰 이벤트에는 후보자들이 생산하는 정보를 액면그대로 보도하기 전에 팩트체크를 우선하는 작업을 정례화하고 있다. 우리 언론은 내년 3월 대선을 유권자들이 최대한 잘 치르도록 얼마나 보도를 통한 책무를 다 하고 있는지 자성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우리 언론은 입법부가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려 했을 때 보수, 진보언론 또는 보도준칙이나 윤리를 지키거나 그렇지 않은 언론 모두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자율적 통제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 그로 인한 박수갈채를 받을만한 어떤 유의미한 결과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언론이 제 4부의 위상을 유지하려면 그 구성원들이 언론윤리와 전문성 두 가지를 겸비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소금과 파수견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내로남불인 경우가 너무 많다. 언론이 남의 허물만 손가락질 할 뿐 정작 자기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으려 하는데 인색하다. 방송사의 비정규직 문제가 법정으로 가거나 국가기간통신사가 광고형 기사를 남발하고 신문발행부수를 속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개개 언론사 차원을 넘어서는 이런 문제는 전체 언론계가 공동 대처해서 대국민 사죄와 함께 재발 방지약속이나 개선실적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언론이 서로 혼탁하다는 공통점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깊어진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연합뉴스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언론은 21세기 정보사회를 맞아 양과 질적인 차원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언론은 정치, 자본과 함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를 받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정착했었는데 오늘날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전통적인 대중매체는 그 시장, 영향력이 축소되고 포털, 플렛폼과 같은 첨단미디어들이 공룡으로 등장했다. 인터넷의 발달과 보급으로 1일 미디어도 가능한 시대다. 이런 변화는 언론이 감내해야 하고 그리고 제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전략과 전술을 과거와 달리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직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언론 대부분은 그 체질이나 시각이 과거의 좋았던 시절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보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고 대처하는데도 여전히 구시대적이다. 언론은 이런 과도기적 상황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 자율적 규제의 첫 단추를 언론윤리와 전문성 확립으로 삼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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