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작업 싫어서, 다른 일 있어서" 안일함이 빚은 KT 먹통사태

차현아 기자, 김수현 기자 2021. 10.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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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조경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KT 네트워크 장애 원인분석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 조 차관은

지난 25일 전국에 발생한 KT 유무선 네트워크 장애는 안일함과 태만, 무책임이 빚어낸 총체적 인재(人災)였다. 통상 밤 시간에 진행하는 네트워크 장비 작업을 단순히 귀찮다는 이유로 낮에 진행해 전국민 먹통사태를 불러왔다. 협력사 직원에게 핵심 네트워크의 장비교체 작업을 맡기고 KT관리자는 현장을 비웠는데 그 이유가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였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이번 KT 장애사태로 제도적 허점도 곳곳에 드러났다. 이용자들은 약 89분 간 발생한 장애 사실을 제대로 고지받기는 커녕, 피해보상 기준조차 미비해 현재로선 KT의 '통큰 결단'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번 장애 원인조사 결과 "KT가 기본 원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결과"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이지만, 현행 법 미비로 KT의 관리부실 책임까지 묻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전국 먹통 불러온 대낮 시간 작업 이유..."야간작업 싫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KT 유무선 네트워크 장애 원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기정통부의 조사결과 당시 장애는 KT 부산국사에서 기업 내부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치인 라우터를 교체하던 중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업체 직원이 라우팅(네트워크 경로설정) 과정 중 프로토콜을 종료하는 'exit' 명령어 입력을 빠뜨리면서 장애가 시작됐다. 이는 연쇄적으로 다른 장비를 교란시켜 전국적 장애가 초래됐다. 하지만 명령어가 누락된 사실은 작성 과정은 물론, KT 직원이 직접 참여한 사후 검증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울러 장비교체로 승인받은 시간은 당초 심야시간(26일 오전 1~6시)이었지만, KT 소속 관리자와 협력업체 작업자 간 합의 하에 심야에서 하루전인 25일 오전으로 옮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교체 작업 중간인 오전 11시 16분께부터 네트워크 장애가 시작돼 낮 12시 45분까지 89분간 서비스가 먹통이 됐다. 장비 교체 시간이 심야에서 낮으로 옮겨진 탓에, 그것도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오전이라 피해가 커졌다.

(부천=뉴스1) 정진욱 기자 = 25일 오전 11시쯤 전국 KT인터넷 장애가 발생해 유·무선망 모두 데이터 전송이 이뤄지지 않는 '먹통'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정오 무렵 경기 부천시 중동에서 한 시민이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다. 2021.10.25/뉴스1

조사 결과 작업시간이 임의로 변경된 이유는 황당했다. 단순히 현장 작업자들이 야간 작업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작업 현장에는 KT 직원 등 관리자 없이 협력업체 직원만 있었다. KT 관리자는 입력된 프로토콜 코드를 검증하는 작업에만 참여했다. 현장에 함께 머무르며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던 KT 관리자는 다른 업무를 핑계로 자리를 비운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 공백은 곧 전국 네트워크 장애로 이어졌다. 네트워크가 차단된 상태에서 작성된 명령어에 오류가 없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장치인 가상 '테스트베드'는 물론, 지역에서 시작된 오류를 확인한 뒤에도 전국으로 장애 확산을 차단하는 시스템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네트워크가 연결된 상태로 교체작업을 진행하다보니, 명령어 오류가 삽시간에 전국 네트워크로 확산된 것이다. 과기정통부 측은 "한 개의 잘못된 라우팅 설정 오류가 전국의 라우터로 연쇄적으로 전달돼 장애가 삽시간에 확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KT는 과기정통부의 조사결과에 대해 "일탈이 이뤄진 예외적인 사례"라면서도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음을 인정했다. 네트워크 작업 전 오류를 검증하기 위한 테스트베드도 현재 우면동 KT 연구개발센터 등 일부에서만 운영 중인데, 이를 전국 네트워크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번에 전국망에 장애를 야기한 라우팅 오류는 기지국 등 네트워크 끝단(엣지)에서 발생했다는 설명도 내놨다. KT는 "이번에 전국적 장애를 야기한 엣지망 단위 라우팅 오류도 차단할 수 있도록 기능을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 터진줄도 몰랐다"..장애발생 고지의무도 무용지물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구현모 KT 대표가 28일 서울 종로구 KT혜화타워(혜화전화국) 앞에서 지난 25일 발생한 KT의 유·무선 인터넷 장애와 관련해 취재진에 답변하고 있다. 2021.10.28/뉴스1
이번 사태는 제도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KT는 유무선 네트워크 장애를 인지한 후 자사 홈페이지에 장애를 고지했다. 하지만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던 이용자들은 KT 홈페이지에 접속해 해당 게시글을 볼 수 없었고, 당연히 장애 사실을 고지받을 수 없었다. 현행법 상 통신사는 서비스 장애에 대해 이메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홈페이지 등 중에서 하나의 방법으로만 이용자에 고지하면 된다는 내용 탓이다.

장애 당시 트래픽 급증으로 전국 KT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린 이유 중 하나도 이용자들이 장애 상황을 신속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발생한 인터넷 서비스에 발생한 먹통현상으로 인터넷과 음성전화, 문자서비스가 중단된 것은 물론, 이를 이상히 여겨 단말기를 껐다 켜는 이용자들이 늘어났다. 단말기 전원을 리셋하면 단말이 다시 망에 등록되는 구조이므로 트래픽이 추가로 발생한다.

이밖에 서비스 장애로 인한 피해보상 기준도 제도 보완 대상이 될 전망이다. KT의 현재 이용약관 상 피해보상 기준에 따르면 연속 세 시간 이상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한 달 누적 6시간을 초과해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할 경우 청구금액의 8배를 배상하도록 돼있다. 이번 장애에는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피해보상 약관 등은 개선...KT 제재는 제도 미비로 어려울 듯"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KT가 대규모 디도스 공격으로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한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 QR체크인 기기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 KT망을 이용하는 상점들에서도 포스기·QR인증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KT는 전국적으로 발생한 유·무선 인터넷 마비 상황의 원인이 디도스 공격이라고 밝혔다. 2021.10.25/뉴스1

과기정통부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통신장애 피해보상 기준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네트워크 운영이 가능하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단기 대책과 중장기 대책을 포괄하는 방안이 포함될 예정이다.

단기 대책으로는 주요 통신사업자의 네트워크 작업체계, 기술적 오류확산 방지체계 등 관리체계를 점검하고, 주요 통신사업자가 네트워크 작업으로 인한 오류여부를 사전에 진단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이 담긴다. 라우팅 설정오류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라우팅 작업 한 번당 업데이트되는 경로정보 개수를 일정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주요통신사업자의 통신장애 대응 모니터링 체계와 네트워크 안정성과 복원력을 높이는 기술개발, 안정적인 망 구조 등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

정부는 피해보상 관련 이용약관과 고지 의무 등도 개선할 방침이다. 이소라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보호정책과장은 "이용자들에게 빠르고 편리하게 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겠다"며 "통신 이용약관 역시 적절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그러나 KT의 관리 부실에 대한 제재조치 등 법적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법에는 명확한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홍진배 과기정통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은 "현재로선 이용자 피해보상 방안과 약관 개정 등이 최선"이라며 "다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으며, 향후 입법 절차를 통해 제도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성욱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네트워크 작업 시 야간에 한 두 시간 정도 테스트를 한 뒤에 서비스를 오픈하는게 기본 상식"이라며 "이런 부분까지 정부가 일일이 규제해야 하는지도 당황스럽고 기본을 안 지킨 것에 대해 어디까지 제도화해서 관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허탈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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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김수현 기자 theksh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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