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정 불가'..병역특례 봉사활동 못채운 선수들 '발등의 불'
AFC 챔피언스리그·월드컵 축구 예선 원정 등 참가할 수 없어
(서울=연합뉴스) 배진남 장현구 기자 = 병역법상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된 스포츠 선수 중 공익복무(봉사활동) 시간을 채우지 못한 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번 달부터 예술·체육요원이 의무복무기간(34개월) 동안 특기를 활용한 공익복무 544시간을 마치지 못하면 이를 다 채울 때까지 의무복무기간이 1년 연장된다. 연장 기간에는 국외여행 허가가 제한된다.
연장된 기한 내 정당한 사유 없이 공익복무를 마치지 못하면 아예 편입이 취소돼 현역으로 복무해야 한다.
당장 다음 달로 의무복무기간 34개월째가 되는 선수 중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지 못해 해외 원정에 나설 수 없는 이들이 생겼다.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의 공격수 이승모는 다음 달 2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알힐랄(사우디)과 치를 202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뛰지 못한다.
이승모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대표팀 일원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고, 2019년 1월 초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됐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다음 달 초 의무복무기간 34개월째가 되는 이승모가 9월까지 인정받은 봉사활동 시간은 총 95시간 30분에 불과하다.
다음 달 AFC 챔피언스리그(ACL) 출전이 어려운 것은 물론 1년이 연장되더라도 남은 봉사활동 시간을 다 채울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FC서울 미드필더 나상호도 비슷한 처지다. 나상호는 국가대표팀 원정 경기가 걸려 있다.
나상호는 11월 열릴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아랍에미리트(UAE)와 5차전 홈 경기, 이라크와 6차전 원정경기를 앞두고 내달 1일 발표될 대표팀 명단에 들더라도 이라크 현지 사정으로 카타르 도하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큰 이라크전에는 뛸 수 없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인 나상호도 2019년 1월 초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됐으나 아직 82시간 30분밖에 봉사활동을 하지 못했다.
2018년 말 축구 국가대표 장현수(알힐랄) 등의 봉사활동 서류 조작사건이 불거지자 정부는 병역법을 개정해 예술·체육요원들의 공익복무 관리를 강화했다.
하루 최대 인정 시간의 경우 준비·이동시간까지 포함해 16시간이었으나 악용사례가 나오자 이동시간은 빼고 8시간으로 줄였다. 이후 다시 이동시간을 4시간까지 인정해 하루 12시간까지 늘렸다.
아울러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공익성 있는 기관'에서만 봉사할 수 있고, 복무 계획서를 사전에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제출한 뒤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 체육요원으로 편입된 선수는 축구, 야구 등을 포함한 13개 종목 36명이다.
시간에 공간적 제약까지 더해진 해외파들도 똑같이 의무 봉사활동 시간을 달성해야 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손흥민(토트넘)은 8월 말 기준 249시간 10분의 봉사 활동을 인정받았다.
손흥민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금메달을 획득해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고, 2022년 5월 2일까지 남은 294시간 50분을 채워야 한다.
이때까지 의무 봉사활동 시간을 충족하지 못하면 손흥민은 자칫 국내에 들어왔다가 소속팀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첫 시즌을 보내고 이달 초 귀국한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당장은 다시 미국으로 갈 수 없다.
김하성은 미국에서 한창 시즌을 치르던 올해 8월까지가 의무복무기간이었으나 164시간밖에 봉사활동을 하지 못해 1년 연장된 상태다.
이번 겨우내 380시간을 채워야 다음 시즌 개막을 준비하러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는 김하성은 이미 봉사활동 계획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기존의 대면 방식 봉사활동 기회가 많이 사라진 터라 선수들은 시간을 채우기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리그나 대회가 연기·취소되는 등 사상 초유의 일을 겪다 보니 선수 자신의 일정조차 예측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선수가 봉사활동 시간이 적은 것은 아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인 축구 국가대표 황인범(루빈 카잔)은 공익복무 시간을 모두 달성했다.
같은 아시안게임 우승 주역인 골키퍼 조현우(울산)는 현재 416시간을 인정받았다.
소속팀과 대표팀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다음 달 말까지인 의무복무기간에 남은 128시간까지 마저 이행하기가 힘들 수는 있지만 연장된 기간에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울산 관계자는 "조현우는 K리그 드림 어시스트 프로그램 등에 꾸준히 참여하고, 시즌 중에도 연고지 내 학교를 찾아가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하는 등 틈틈이 봉사활동을 해왔다"고 전했다.
'K리그 드림 어시스트'는 전·현직 K리그 선수들이 축구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를 대상으로 일대일 멘토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결국 선수 개인의 의지와 구단 등의 협조, 나아가 대한축구협회나 프로축구연맹 차원의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등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대한축구협회는 선수들의 봉사활동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독려하는 한편, 온라인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해외파 등 일부 선수만 활용하고 있어 더욱 대상을 확대하고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물론, 당장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국제대회 참가를 위한 출국 등이라도 한시적으로나마 허가해주길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선수가 온라인 멘토링 등으로 봉사활동을 잘 이수하는 만큼 특정 사례에 예외 조항을 두는 건 어렵다고 본다"면서 "다만, 어느 정도 상황이 심각한지 축구협회 등과 논의하며 현황을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hosu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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