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성로 4차산업혁명위원장 "리걸테크 시대 거스를 수 없어.. 판결문 개방 시급"
하반기 로톡 등 법률 플랫폼 육성 정부 기조 맞춰
누구나 쉽게 판결문 찾고 읽도록 규제 개선해야
'AI 판례분석' 등 新서비스로 법률시장 성장 기대
4차산업혁명에 맞춰 법률 서비스에도 정보기술(IT)이 접목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리걸테크(legal tech)’ 산업의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한국의 리걸테크 성장을 위해선 판결문 데이터 개방 확대가 시급합니다.
윤성로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법률과 정보기술(IT)을 결합한 새로운 법률 서비스나 기업, 이른바 리걸테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리걸테크 시장 규모는 투자액 기준 2016년 약 2억달러(약 2300억원)에서 2019년 11억달러(약 1조2900억원)로 3년간 4.5배 성장했다.
국내에선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 등 스타트업이 초기 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다. 로톡의 경우 서비스의 위법 소지를 두고 대한변호사협회와 첨예하게 갈등 중이지만, 법무부는 지난 8월 로톡을 합법적인 서비스로 규정하고 지난달 29일엔 ‘리걸테크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이런 정부 계획을 실행하는 또 하나의 축은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다. 4차위는 이달 출범 4주년을 맞아 ‘판결문 데이터 개방 확대’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재 접근이 제한적인 법원 판결문을 누구나 쉽게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나아가 인공지능(AI) 학습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개인의 소송 대응과 기업의 서비스 개발을 돕겠다는 것이다.
조선비즈는 지난 21일 윤성로 4차산업혁명위원장(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과 출범 4주년 인터뷰를 통해 이 프로젝트의 필요성과 추진 계획을 들었다.
◇ 부동산 데이터 열어 프롭테크 성장 물꼬… 다음 타깃은 법률시장
4차위는 4차산업혁명에 따라 등장하는 신기술을 국내 기업이 해외 경쟁자에 뒤처지지 않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도록 각 부처와 조율해 규제 개선을 주도하는 범부처 기구다. 특히 기업이 AI 학습, 마케팅, 고객관리 등을 위해 필요로 하지만 개인정보보호 규제 때문에 활용할 수 없는 데이터를 개방하는 역할을 해왔다.
부동산 실거래가와 건물 평면도 등을 개방해 프롭테크(IT가 접목된 부동산 서비스)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국세청 데이터를 개방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국민 소득 파악을 가능케 한 게 최근 4차위가 거둔 대표적인 성과다. 환자가 병원에서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직접 청구해야 하는 실손보험 청구를 진료 즉시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진료 데이터를 개방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거치고 있다.
4차위가 새롭게 개방하려는 데이터는 법원 판결문이다. 윤 위원장은 “판결문 개방은 헌법 제109조 재판공개의 원칙에 따라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개방했어야 할 데이터다”라며 “현재 판결문은 변호사 같은 법조계 전문가만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이를 개방하면 누구나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읽을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변호사도 일일이 수백·수천쪽의 판결문을 모두 뒤질 필요가 없어져 국민에게 제공되는 법률 서비스가 향상되고, 법률 플랫폼을 포함한 리걸테크 기업은 더 많은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 2013년 이전 판결 비공개에 텍스트 아닌 이미지라 문서 내 검색 불가
판결문은 지금도 어느 정도 민간에 개방돼 있긴 하다. 전용 웹사이트, 이메일(사건 당사자만 가능), 법원도서관 PC를 통해 형사는 2013년, 민사는 2015년 이후 확정판결에 대해서만 건당 1000원에 유료 열람할 수 있다. 판결문은 이미지 형식으로 제공된다.
윤 위원장은 “현재 판결문 개방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라며 “2013년 이전의 사건을 조회할 수 없고, 이미지 형식이기 때문에 수백·수천쪽의 문서 안에서 키워드 검색과 기계(AI)의 판독이 불가능하며, 가독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비실명처리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비실명처리는 원고·피고의 실명 등 민감한 정보를 A, B, C 같은 알파벳으로 바꾸는 과정인데, 비실명처리된 정보가 지나치게 많아 문서 열람을 어렵게 만든다는 게 윤 위원장의 지적이다.
이에 4차위는 ▲2013년 이전의 확정판결에 대해서도 열람이 가능하고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 형식으로 제공해 문서 내 키워드 검색과 기계 판독이 가능하며 ▲또 오픈API 형식으로 제공해 개발자들이 서비스 개발에 자유롭게 응용할 수 있고 ▲개인인지 법인인지 속성이라도 구분할 수 있는 새로운 비실명처리로 사람들이 판결문을 쉽게 읽을 수 있으며 ▲헌법의 취지에 맞게 무료로 열람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4차위는 이런 내용을 담은 ‘판결문 인터넷 열람·제공 제도개선 제언’이란 안건을 지난 28일 제25차 전체회의에서 상정했다. ‘제언’의 대상은 사법부다. 의료·금융 등 정부 내 관계부처와 조율하면 개방이 가능한 데이터와 달리, 판결문은 사법부가 주도적으로 개방 확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 개인정보 침해 우려에 변협-로톡 갈등… “사법부가 도와달라”
다만 개인정보 침해, 판례 위변조 우려 등으로 법조계에선 판결문 데이터 개방에 대한 찬반이 나뉘는 것으로 알려졌고, 안건의 취지 중 하나인 리걸테크도 변협과 로톡이 서로 갈등하는 영역인 만큼 사법부도 결정을 내리는 데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 위원장은 “사법부는 인권의 보루다 보니 데이터 개방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라며 “앞으로 정부와 사법부 사이에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판결문 개방 확대는 리걸테크 산업 지원만을 위한 건 아니다. 윤 위원장은 “판결문을 개방할수록 사법 투명성이 높아지고 국민이 제대로 재판과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라며 “또 기업이 기술특허 등 여러 소송을 벌이는 가운데, 판결문 데이터를 통해 불필요한 소송을 줄여 업무 부담과 사회적 비용 낭비를 막을 수도 있다”라고 했다.
이런 데이터 개방의 수혜가 플랫폼 대기업에 돌아가고 결국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플랫폼 독과점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윤 위원장은 “데이터와 이를 활용하는 플랫폼은 4차산업혁명을 실현하는 중요한 툴(수단)이다”라며 “기본적으로 플랫폼을 진흥하되 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는 장려하고 독과점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서비스는 규제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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