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말 권하는 사회 [우리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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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일부분이 줄어든 말, 또는 여러 말을 한 말로 줄여 만든 말을 준말이라 한다.
준말에는 '요새(요사이)'처럼 고유어도 있고, '지자체(지방 자치 단체)'와 같은 한자어도 있다.
실제로 '중앙 부처가 통폐합되면서 길어진 명칭을 줄임말로 쓰면서 어감이 좋지 않다(한겨레신문, 1998년 7월)'는 지적은 오래되었으나,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처럼 소통을 무시한 한자어 준말은 지금도 양산되고 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준말에 대한 언론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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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일부분이 줄어든 말, 또는 여러 말을 한 말로 줄여 만든 말을 준말이라 한다. 준말에는 ‘요새(요사이)’처럼 고유어도 있고, ‘지자체(지방 자치 단체)’와 같은 한자어도 있다. 우리말은 ‘강물, 빗물, 눈물, 콧물’처럼 말에다가 말을 붙여 새말을 만드는 특성이 있어, ‘불백(불고기 백반), 치맥(치킨과 맥주)’처럼 무엇이든지 줄이고 붙인 새말이 많이 생긴다.
한자어에서는 ‘여고(여자고등학교)’처럼 뜻을 담고 있다며 말 줄임 현상이 더 심하다. 그러나 뜻글자인 한자를 한글로 써 두고서 ‘한자어는 말의 뜻을 보여준다’는 것은 막연한 신념에 불과하다. 실제로 ‘중앙 부처가 통폐합되면서 길어진 명칭을 줄임말로 쓰면서 어감이 좋지 않다(한겨레신문, 1998년 7월)’는 지적은 오래되었으나,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처럼 소통을 무시한 한자어 준말은 지금도 양산되고 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준말에 대한 언론의 태도다. 신문 기사와 방송의 말이 미치는 영향력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언론은 준말 사용에 스스럼이 없을뿐더러 장려하는 모양새다. 지면에 제한이 있다는 이유로 신문은 ‘영끌, 먹튀, 돈쭐’을 쉽게 쓸 뿐만 아니라, 기사 제목에 ‘알바, 남친, 여친’까지 올린다. 파 값이 오르면 ‘파테크’, 더운 여름날이면 ‘베터파크(베란다 워터파크)’, 환경보호에 동참하라면서 ‘줍깅, 플로깅’ 등을 국민이 알아야 할 말인 양 내놓는다. 심지어 줄여 만든 새말의 뜻까지 살뜰하게 풀이해 준다.
기사문에서 ‘혼술, 혼밥’을 소개하자, 여행사 광고에는 금세 혼자 가는 여행이라는 ‘혼행’이 실린다. 언론이 준말을 유행처럼 쓰는 것을 보면서 어린 학생들은 서너 글자만 넘어가면 줄임말로 대체하려 든다. ‘반신(반말 신청),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등 올해 학생들에게 유행한 말만 봐도 그러하다. 준말이 은어가 되어 세대 간 소통을 방해한다고들 말하곤 하는데, 기성세대가 학생들을 탓할 자격이 있는가?
준말을 소개하고 풀이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역할이 아니다. 굳이 해석을 한 줄 써야 하는 말을 배워야 할 말처럼 공론화하는 것이 문제다. 일제 강점기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현진건)에서는 애국적 지성들이 술을 마시는 것은 ‘사회’ 탓이라 했다. 주권을 잃은 강점기도 아닌데 지금 우리 사회는 말 줄이기를 권하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탓인가?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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