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중 나타났다 사라지는 섬처럼, 친구도 그런 거야

채민기 기자 2021. 10.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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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도서관

너와 내가

쇤네 레아 글|스티안 홀레 그림|김상열 옮김|북뱅크|57쪽|1만7000원

뱃사람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노를 저어 배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며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말한다. “네가 노를 젓는 동안 섬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할 거야. 친구들 또한 그렇단다.” 손녀가 장차 헤쳐나가야 할 인간관계를 바다와 섬에 빗대 알려 주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상황은 점점 정말로 손녀가 노를 저어야 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지친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자신이 노를 저었으니 돌아갈 때는 손녀 차례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노를 내려놓고 뱃머리에 누워 눈을 감아버린다.

/북뱅크

‘늙은 할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 손녀의 내면에 깔려있던 공포가 수면으로 떠오른다. 이제 바다엔 비바람이 몰아친다. 손녀는 두렵지만 스스로 노를 저어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눈을 뜬 할아버지의 방수 외투에 얼굴을 묻으며 “할아버지에게서 집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아침마다 혼자서 배에 고인 물을 퍼내야 하리라는 걸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을 바다에서 보낸 한나절에 비유해 형상화했다. 흔히 생명의 보고(寶庫)라고 하지만 바다는 거친 풍랑이 일고 깊은 밑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공포의 공간이기도 하다.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은 그림 작가의 삽화가 바다의 양면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손녀의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평온했던 바다는 정체 모를 괴물들이 우글대는 곳으로 변하기도 한다. 사실적이면서도 어딘가 초현실적인 그림에서 소녀가 느끼는 외로움과 상실감, 불안이 전해져 온다.

두려움은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 자체가 아니라 두려움을 대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용기를 내서 두려움을 넘어설 때 인간은 성장한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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