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불필요한 빛의 절멸
[경향신문]
한 지인이 동양의 옛 그림에서는 왜 그림자를 그리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동양미술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한 나는 아는 선생님에게 여쭤봤다. 선생님은 동양인은 태양이 만드는 광학의 세계 바깥, 우주를 상상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의 동양인들은 태양이 드리우는 빛과 그림자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그림자는 물체의 본질이 아니라 그 반영일 뿐이므로, 굳이 관심을 기울일 이유 또한 없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동양인은 ‘광학적 세계’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빛이 인도하는 세계의 질서에 푹 빠져 있는 지금의 내 눈과 머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계 바깥을 상상하고 통찰한다는 것은 이 세계의 질서를 다르게 판단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과거의 동양인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도 나를 중심에 두고,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만 집중하기보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 시선 역시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만물과 깊은 교감을 나눈 뒤에야 비로소 그 다양한 시선의 방향을 하나의 화폭 안에 펼쳐나갈 수 있었던 과거 동양인들의 태도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브 탕기는 그림을 그릴 때, 생각을 접고 무의식 상태로 손의 움직임을 따른다고 했다. 그렇게 표현하고 싶은 세계는 아마 ‘눈’에 지배받지 않는 사유일 것이다. ‘불필요한 빛의 절멸’에서 이브 탕기는 지나친 ‘빛’은 그가 추구하는 의식 너머의 세계를 방해한다는 것을, 정작 제대로 보는 일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건 아닐까. 빛의 문제를 상기시키는 그의 작업에서 과거 동양화가들이 보여준 세상에 대한 통찰을 만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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