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친환경’ 뒤에 숨은 환경오염
산업폐기물을 ‘친환경 재료’로 둔갑시키는 마법이 있다. 철 만들 때 나오는 찌꺼기 ‘제강(製鋼) 슬래그’를 도로 기층재로 재활용하면서 ‘환경표지인증’을 받을 때다. 1992년부터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발급 중인 환경표지인증은 ‘기존 물질의 환경성을 개선해 제품을 만든 경우’ 내준다. 예컨대 중금속이 포함된 슬래그를 물에 불려 유해 성분을 빼내고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굳힌 뒤 도로 기층재로 사용하면, 슬래그를 단순 방치했을 때보단 쓰임새가 개선됐기 때문에 ‘자원 재활용’에 가점을 주어 친환경 인증을 내주는 식이다.
환경표지인증의 본래 취지는 폐기물 시장의 음성화를 막는 데 있다. 폐기물에 상품성을 부여해줄 테니 몰래몰래 버리지 말란 것이다. 인증 제품에 대해선 3년간 환경성 평가도 면제해줬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환경 이슈가 터질 때마다 업체들은 환경표지인증을 무적의 마패처럼 들이밀었다.
새만금개발청은 새만금 육상 태양광 건설 현장 도로에 깔린 제강 슬래그 42만톤이 수개월째 외부에 노출돼 빗물이나 지하수와 맞닿아 각종 오염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에 “슬래그는 친환경 재료”라고 항변했다. 근거는 환경표지인증이었다. 육상 태양광 부지 35km에 깔린 90cm 높이 슬래그 도로가 아무것도 덮이지 않은 채 중금속 먼지가 흩날리는 데도 개발청은 그저 환경표지인증 뒤로 숨었다. 현장에서 슬래그가 적법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주무 관청의 관리 감독 책임을 물으니 “개발청이 시시콜콜한 현장까지 전부 확인할 순 없다”고 했다. ‘시시콜콜’이란 단어가 4200억원에 달하는 공사비에 어울리진 않아 보인다.
정작 새만금 슬래그에 환경표지인증을 내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앞으로 골재로 재활용되는 슬래그가 해양·토양과 맞닿아 쓰이는 경우 인증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했다. 새만금처럼 쓰면 인증을 안 해주겠다는 것이다. 기술원은 “환경표지인증을 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공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야기될 가능성이 생기면 친환경 자격을 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행 환경표지인증은 슬래그 시료만 보고 내주기 때문에 시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오염 문제까진 아우르지 못했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개선 의지를 보인 셈이다.
새만금 태양광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탄소 중립 정책을 편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이다. 올 4월 첫 삽을 뜬 300㎿(메가와트) 규모 육상 태양광의 현재 공정률은 88%. 완공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새만금개발청은 슬래그를 친환경 재료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어쩌면 친환경 에너지를 만든다며 멀쩡한 갯벌을 태양광 패널로 덮겠다는 발상부터가 친환경 정책의 허상일지도 모르겠다. 친환경이란 명분하에 오늘도 새만금은 병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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