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 '언론 대통령'을 뽑자, 우리 손으로

김택근 시인·작가 2021. 10. 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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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언론개혁은 물 건너간 것 같다. 언론중재법을 놓고 벌인 기이한 논쟁에 정작 중요한 개혁과제들은 실종되었고 대통령선거판이 벌어지자 정치권은 오히려 언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언론개혁에 관한 개인적인 바람이 하나 있었다. 공영방송이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촛불정권은 방송에서 권력의 그물을 걷어내지 않았다. 권·언 유착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음이다.

김택근 시인·작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곧바로 방송 장악에 나섰을 때 언론노동자들의 정권과의 투쟁을 기억한다. 시퍼런 권력은 핏발 선 눈으로 방송을 노려봤고, 노동자들은 뭉쳐서 거세게 저항했다. 이렇듯 거대한 연대투쟁은 한국 방송사에 없었다. 당시 나는 문화방송(MBC) 시청자위원이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겨우 시청자 의견서에 의견 대신 격문을 썼을 뿐이다.

“MBC가 살아있음이 기쁩니다. 이는 구성원들이 정의에 길을 묻고 양심에 따라 취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살아있는 조직에서 진실을 살아있게 만드는 MBC의 저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권력을 좇는 무리들이 부나방처럼 몰려다니는 요즘, MBC는 그 권력 위에 의연하게 빛나는 큰 횃불이기를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방송사의 시청자위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거듭 제작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2007년 11월)

“KBS 사장 퇴진 압력과 관련하여, 감사원을 동원하여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검찰은 정연주 사장의 소환을 통보해 놓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국가기관을 동원한 방송장악 압박입니다. 단언컨대 KBS를 장악하면 MBC를 손보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기도는 어떤 형태로든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2008년 6월)

간절한 바람에도 MBC 사원들이 뿜어낸 정의로운 에너지는 하늘에 닿지 못했다. 권력은 공권력을 총동원하여 방송을 장악해나갔다. 결국 속속 권력에 투항했고, 더러는 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했다. 양심에 따라 진실의 편에 섰던 노동자들은 거리를 떠돌아야 했다. 대명천지 독립국가에서 ‘독립운동’ 하듯이 살아가야 했다.

다시 정권이 바뀌었다. 공영방송사에서 새 인물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그리고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공영방송이 바로 섰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편파방송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그 강도가 다소 약해졌을 뿐이다. 그 까닭을 공정보도에서 찾는다면 착각이다. 영향력이 현저하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권력의 방송장악은 편파보도를 불러오고, 편파보도는 내부의 의견을 분열시켜 구성원들을 편싸움으로 내몬다. 진보와 보수로 갈려 정권이 교체되면 거의 학살 수준의 물갈이가 이뤄지고 있다. 승자들이 자리를 독식하면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한직으로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인재가 넘쳐도 일손이 부족하다. 정권 말기에는 살벌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그럼에도 지배구조 개선 등 개혁에는 손을 놓고 있다. 풍찬노숙을 하면서도 정론을 외치던 그때를 잊었는지. 마음의 불을 이기지 못한 이용마 기자의 죽음을 잊었는지.

오염된 전파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즘, 믿고 보는 방송 하나 없음이 참으로 허망하다. 그러고도 선진국인가. 우리는 한 번도 방송을 바로 세워보지 못했다. 방송사 하나를 반석에 올려놓음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정의와 상식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엄청난 일이다. 공영방송이 ‘진실의 빛’을 송출한다면 기형과 가짜가 판치는 언론 생태계에 혁명적인 변화가 올 것이다.

우리 곁에는 두 공중파 공영방송사가 있다. 수신료를 받는 KBS와 스스로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MBC가 있다. 위기의 공영방송이 살길은 무엇일까. 정치권은 ‘국영’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방송사 내부는 적폐와 기득권이 얽혀서 개혁방안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국민들이 나설 때가 되었다. 차라리 공영방송사의 수장을 국민투표로 선출하자. 그리하면 ‘언론 대통령’이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보다 못한 서생의 제안이니,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날에 언론 대통령도 함께 뽑자. 권력과 금력 등 어떤 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화면이 보고 싶다. 그런 날이 오면 내 집에 배달되는 전파 요금이 좀 비싼들 어떠랴.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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