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24] 사람이 사라진 자리
작업실 근처 무인 빨래방 옆에는 무인 카페가 있다. 멀지 않은 곳에는 아이스크림을 할인해 주는 무인 가게가 있고, 소위 ‘인생샷’을 찍는다는 즉석 사진 점포가 있다. 이 가게의 계산대에는 사람이 없다. 점포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속도만큼 동네 곳곳에는 ‘임대 문의’ 글자가 붙은 상점도 늘고 있다. 지금은 ‘키오스크’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기계 앞에서 김밥이나 햄버거를 주문하는 일이 낯설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얼마 전 ‘판교 신혼부부의 재질이 좋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판교 근처의 IT 회사에 다니며 한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퇴근 후 식사하는 고스펙 부부의 일상을 스케치한 광고의 댓글이었다. 물건 앞에 붙는 ‘재질’이 사람에게 적용되는 걸 보며 처음 ‘착한 가격’이란 말을 들었을 때의 낯섦이 떠올랐다. 인격을 설명하는 ‘착한’이 인격 없는 무생물에 이입되어 쓰이는 시대다. 알다시피 욕망은 언어적 표현을 만들고, 표현은 그 욕망을 더 증폭시킨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이 동물이나 식물 앞에 ‘반려’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구’ 앞에도 ‘반려’라는 말이 붙는다. 오래 곁에 두고 보는 많은 것 앞을 차지한 ‘반려’라는 단어에 사람들은 점점 더 익숙해질 것이다. 반려에 대한 기념비적 장면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나온다. 주인공은 무인도에서 조난 중에 만난 배구공 윌슨을 친구로 여겨 믿고 의지한다. 바다에서 윌슨을 놓친 그가 “미안해 윌슨!”이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아직도 아프게 기억에 남는다. 인류는 36.5도의 ‘체온’이 아닌 다른 ‘온기’를 사람 이외의 것에서 참 오래 찾아 헤맨 것 같다.
무인 빨래방에서 겨울 이불을 세탁하는 동안, 바로 옆 무인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셨다. 인간은 결국 더 외로워지는 쪽으로 진화하는 걸까. 하지만 무인 카페 안 홍콩야자나무를 바라보며 저 ‘아이’가 죽지 않은 건 누군가의 꾸준한 돌봄 때문이란 생각을 했다. 기계가 서빙하는 침묵의 카페 안, 모두 21세기적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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