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한 통의 편지를 부치기까지

- 2021. 10. 2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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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동화책에서 읽었다며 자기도 편지를 부쳐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까 손글씨로 쓴 편지를 편지봉투에 넣고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주소를 기입한 후 우표를 붙여 빨간 우체통에 넣는, 그 일련의 과정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구태의연한 것의 고색창연함을, 그 느리고 번거로운 과정이 주는 특별한 설렘을 아이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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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동화책에서 읽었다며 자기도 편지를 부쳐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까 손글씨로 쓴 편지를 편지봉투에 넣고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주소를 기입한 후 우표를 붙여 빨간 우체통에 넣는, 그 일련의 과정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이뿐 아니라 나도 그런 과정을 거쳐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본 일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됐다 싶었다. 하기야 이메일이 있는데, 메신저가 있는데, 아니, 저마다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니 그저 버튼 한 번이면 바로 통화가 가능한 이 대명천지 21세기 한국 땅에서 종이편지가 웬 말인가. 하지만 그 구태의연한 것의 고색창연함을, 그 느리고 번거로운 과정이 주는 특별한 설렘을 아이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문제는 우체통이었다. 집 근처 동네 곳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전에는 흔했던 것 같은 우체통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발품을 팔다 지쳐 버릇처럼 스마트폰 지도 앱을 켰다. 별 기대 없이 ‘우체통’ 세 글자를 입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즉각 “접속지역 주변 우체통 검색결과입니다” 안내문과 함께 나의 현재 위치를 중심으로 4km 반경 안에 우체통이 세 군데 있다는 결과가 도출되는 게 아닌가. 어쨌든 찾았으니 다행이다 싶은 한편 아날로그로 향하는 길을 디지털이 안내해 준다는 사실이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제 우표를 살 차례였다. 우체국은 너무 멀었다. 예전에는 문방구에서도 우표를 팔았는데 요즘 문방구는 그렇지 않겠지, 하며 걷다 보니 마침 눈앞에 초등학교가 나타났다. 속는 셈치고 학교 앞 문방구로 들어가 보았다. 놀랍게도 거기 우표가 있었다. 우표뿐 아니라 그곳에는 없는 게 없었다. 연필, 지우개, 필통, 크레파스 같은 학용품에서부터 조립식 로봇, 고무공, 나무 팽이, 플라스틱 인형, 물총 같은 장난감이, 물론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의 물건과는 품질이며 종류의 다양함 등에서 비교할 수가 없겠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척 봐도 불량식품인 형형색색의 군것질거리들과 싸구려 액세서리, 동전으로 작동되는 게임기 역시 변함없는 존재감을 뽐내며 문방구의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표를 사고 꽃무늬 편지지와 편지봉투도 샀다. 이제 아이에게 편지를 쓰게 할 일이 남았다.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가장 중요한 일은 이미 해치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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