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한 집에서 펼쳐지는 기묘한 추격 [책과 삶]
[경향신문]
피라네시
수재나 클라크 지음·김해온 옮김
흐름출판 | 356쪽 | 1만5000원
판타지 소설 <조나단 스트레인지와 마법사 노렐>로 데뷔와 함께 휴고상을 거머쥔 SF 작가 수재나 클라크가 16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채 신비로운 공간에서 홀로 살아가는 ‘피라네시’라는 인물의 이야기다. 피라네시는 “헤아릴 수 없고, 무한히 자애롭다”고 자신이 속한 집을 묘사한다. 스스로에 대해선 “서른에서 서른다섯 살 사이로 짐작”할 뿐이다. 그는 무수히 많은 방과 복도, 현관과 벽으로 이루어진 집을 끊임없이 탐사한다. 집 안에는 밤낮없이 바닷물이 흘러들고, 하늘엔 언제나 태양과 달과 별이 빛나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을 최대한 널리 탐사할 작정”이라는 피라네시는 혼자 살아가는 이 미로 같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강박적으로 기록한다. 집 곳곳에 위치한 각 조각상의 위치와 특징부터 조수의 일정,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흔적까지 닥치는 대로 적어내린다.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기묘한 공간 묘사는 압도적인 동시에 혼란하다. 다른 차원으로 부르는 듯한 피라네시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그의 집에 발을 들이면, 뜻밖의 미스터리 스릴러가 시작된다. 낯선 침입자 ‘16’이 갑자기 피라네시를 뒤쫓고 또 다른 인물 ‘나머지 사람’은 16을 살해하기 위해 덫을 놓는다.
문장은 아름답고 치밀하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소설 속 광대한 집을 건축하는 재료가 된다. 작가가 보르헤스 소설 강좌를 듣다가 떠올린 “조수가 흘러드는 거대한 집에 사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주춧돌이 됐다. SF 작가 김보영은 “고대의 장인처럼 웅장한 전당을 설계하여 당신을 던져 넣는” 책이라고 평했다. 메타버스의 시대, 가장 매혹적인 가상을 제시하는 책이다. 2021년 휴고상 최종 후보에 올라 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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