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갈리마르, 프랑스 출판의 반세기 - 피에르 아술린 [이승우의 내 인생의 책 ⑤]
[경향신문]
누군가 20세기 현대 출판에서 ‘좋은 의미에서’ 출판제국을 만든 위대한 두 출판인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창업자 가스통 갈리마르와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의 2대 대표를 지낸 지크프리트 운젤트를 말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들에 의해 20세기 유럽―20세기 전반부는 갈리마르에 의해 프랑스가, 20세기 후반은 운젤트에 의해 독일이―은 ‘책’을 기반으로 유럽 문화 전반이 풍요로운 시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고 본다.
20세기 전반, 세계 문화를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프랑스 대다수의 작가나 사상가가 갈리마르 출판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앙드레 지드, 앙드레 말로, 마르셀 프루스트, 장폴 사르트르, 시몬 보부아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레몽 아롱, 루이 아라공 등 이름을 모두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갈리마르는 자신의 출판제국에 그들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사업가로서의 기질도 풍부했지만, 내가 이 책에서 그를 통해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은 책 만드는 데 있어서 저자들과의 ‘정신의 교류’였다. 갈리마르는 저자들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썼고 작가의 작업실을 들락날락거리며 수많은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그런 점에서는 주어캄프 출판사의 운젤트 역시 그에 버금간다. 2002년 작고했지만, 그가 작가들과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 지금도 두툼한 분량으로 출간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 책은 한 출판인의 평전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고 벌이는 출판인 간의 암투, 나치 침공 당시 괴뢰 정권 비시체제 아래에서 출판인들이 벌인 레지스탕스 활동 등 ‘책’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풍부하다. 이 책은 내가 책 만드는 일에 지칠 때마다 서가에서 다시 찾아 읽는 1순위 목록에 올라 있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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