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책임져야".. 갈수록 입지 좁아지는 글로벌 석유·가스 공룡들
"기후대응 조직적 방해·책임 회피" 지적
'큰손' 유럽투자은행, 대출 사실상 차단
"악마화 전략 결국 가격 상승 불러올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구촌 에너지 시장을 주름잡았던 글로벌 석유·가스 공룡 기업들의 입자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올해 세계 곳곳에서 이상고온과 한파, 기록적 폭우가 쉴 새 없이 몰아치면서 기후위기 우려가 한층 더 커졌고, 각국도 이에 맞서 탈(脫)탄소 기조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를 부추기는 ‘악당’으로 낙인찍힌 것은 물론, 투자자들이 등을 돌려 돈줄마저 끊길 위기에 직면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빅오일(석유 대기업) 악마화 전략’이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서 ‘화석연료 기업 때리기’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날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는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엑손모빌과 업계 2위 석유 메이저 로열더치셀, 쉐브론, BP아메리카 등 거대 석유 기업 경영진이 집중난타를 당했다. 의원들은 “기후 위기 주범인 석유 기업이 문제를 은폐하고 국제사회의 기후 행동을 축소하려 조직적으로 행동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의회 성명을 보면, 업계는 최소 1977년부터 화석연료 연소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이미 미국 석유학회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기후변화 대응에 나섰을 정도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돌연 조사를 포기하고 팀도 해체했다. 석유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치권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로비가 이뤄진 것도 이쯤이다. 화석연료 생산을 옹호하는 싱크탱크와 단체에도 거액이 흘러 들어갔다. 결국 자본을 동원해 기후변화 의제를 축소하고 퇴색시켰다는 얘기다. 캐럴린 멀로니 민주당 의원은 “석유업계는 오랫동안 지구를 기후 재앙으로 내몬 데 대한 책임을 회피해 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석유회사 측은 이날도 ‘면피성 주장’으로 일관했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최고경영자는 “기후변화 현실과 위험성을 오랫동안 인정해 왔다. 위험 해결을 위해 상당한 자원도 투입했다”고 주장했다.
대서양 너머, 유럽에서도 화석 에너지 기업의 ‘수난’은 이어졌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공동 출자한 투자기관 유럽투자은행(EIB)은 이날 석유·가스 회사에 대한 모든 대출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EU 내 저개발 지역의 개발·원조를 목적으로 설립된 EIB는 지난해 말 기준 총 자산이 5,543억 유로(약 756조 원)에 달하며, 친환경 분야에서 세계 최대 자본력을 갖춘 금융기관이다.
물론 EIB가 화석연료 기업의 돈줄을 옥죄고 나선 게 처음은 아니다. 2019년 11월에도 ‘기후 은행 전환’을 선포하면서 “화석연료 관련 사업에 대한 신규 대출을 멈추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석유·가스 회사가 ‘저(低)탄소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는 경우엔 눈감아 왔던 데 반해,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 이조차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는 아예 ‘더 정교한 탈(脫)탄소 계획을 제시해야만 대출을 해 주기로 한 것이다. 예컨대 석유 회사의 풍력 에너지 사업에는 대출을 해 줬던 종전과 달리, 이제부터는 이 역시 자금 지원을 끊겠다는 의미다.
가디언은 “EIB 대출 수혜자의 약 10%인 50곳가량의 기업과 공공기관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네덜란드 공적연금(ABP)’도 최근 “2023년까지 보유 중인 150억 유로 상당의 화석연료 기업 자산을 매각하고, 앞으로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움직임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 개최(31일)를 사흘 앞두고 친환경 정책에 더욱 고삐를 죄려는 행보다. 베르너 호이어 EIB 회장은 “기후 행동을 위한 선도 은행 중 하나로서, 기후 야망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화석연료 기업 배척 움직임이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는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라울 르블랑 애널리스트는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에 “자본 제한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겠으나, 전 세계가 아직은 화석연료를 필요로 하고 있어 결국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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