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형제 '다른 의견'이 비행기 띄웠다 [Books]
풍동실험에서 얻은 데이터로 동력장치를 창조하려던 그들의 바람과 달리, 글라이더는 50번 중 한 번꼴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둘은 모래밭에서 인류 최초의 비행기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들의 성은 라이트(Wright). 모두가 다 아는 그 '라이트 형제'다.
세상은 형제를 엔지니어로 기억하지만 사실 둘은 공학도가 아니었다. 자전거 가게 주인이었다. 동네 주민에겐 가게 위층에서 들리는 형제 말다툼이 익숙했다. 논쟁은 격렬했어도 토론엔 예의가 그득했다. "논쟁은 눈을 가리는 티끌과 들보를 치워 양편 모두 선명하게 보는 것"(윌버)이라고 둘은 믿었다. 대학 근처에도 못 가본 형제는 그렇게 비행기를 띄웠고, 인류에게 창공의 자유를 선물했다.
모든 '나'와 모든 '너'는 도대체 왜 싸울까. 이혼 도장을 찍으려는 신혼부부, 자녀와 싸우다 속이 까매진 부모, 키보드 워리어 댓글에 상처받는 당사자 모두가 피의 링 한복판에 서 있다.
인간은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충동적이고 불안정하다. 선함보다 악함에 가까운 본성을 가진 '나'는 상대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답하려는 성향까지 가졌다. 맥락을 파악하지 않는 세태도 대립 원인이다. 현대사회는 고(高)맥락 사회에서 저(低)맥락 사회로 이동 중이다. 과거엔 모든 대화 참가자가 맥락(context)을 확인하고 이를 수용하는 과정이 요구됐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저맥락 사회 플랫폼에선 언어만이 대화 조건의 전부다. 말(言) 외에 주어진 정보가 없기에, 우리는 '또' 싸운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모든 갈등이 비합리적 선택은 아니다. 갈등은 인간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먼저 망하는 이유는 대립 없이 나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한 일인자에 의존하는 집단이어도 조직은 와해된다. 결국 어떻게 '잘' 싸울 것인가가 공동체 생멸을 결정한다는 것. 갈등을 내려놓고 목표를 향해 가는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넬슨 만델라의 일화는 이 질문에 답하는 우화처럼 기억된다. 감옥에 갇힌 만델라가 처음 한 일은, 자신을 감옥에 가둔 백인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었다. 만델라는 그들이 쓴 시와 소설을 읽었다. 백인 통치자와의 대화가 성공적이려면 저들이 자신을 두려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 '자신이 상대에게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는가'를 고민하는 일은 대화의 출발점이다. 인간은 적의를 어렵지 않게 간파한다. 다가오는 위협에 둔감한 인간은 의외로 적다. 자기 정체성이 공격당한다고 느끼면 맞서 싸우게 된다. 그런 점에서 상대의 방어태세를 무너뜨리는 질문은 바로 이거다. '조금 더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대화의 핵심은 유대와 연결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는 질문보다는 상대 주장에 호기심을 드러내기. 이것이 열쇠다.
갈등이 점화되기 시작할 무렵, 뻔한 질문을 던지는 무심함도 지양해야 한다. 뻔한 질문은 자기를 해치는 원인이다. 익숙한 질문이 논쟁의 탁자에 놓이는 순간, 대립의 참가자들은 거부할 수 없는 진부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이를 막으려면 판을 뒤집어야 한다. 예측하지 못한 말로 동의해주거나 주제를 바꾸는 노련함도 필요하다.
적은 눈앞의 상대가 아니라 바로 상대를 찌르는 자기 자신이라는 성찰은 또 어떤가. 상대가 비정상이고 자신이 정상이라는 무의식적 확신에도 균열을 내야 한다. 이뿐인가. 지위 다툼을 시작하지 말고, 목적 없이 화내지 않으며, 실수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소모적인 논쟁을 초월해 실용적인 삶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저자는 394쪽의 책에서 수십 가지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근대철학의 문을 열어젖힌 프랜시스 베이컨은 말했다. "인간은 어떤 의견을 갖고 나면 다른 모든 것들을 끌어다 그 의견을 지지하거나 동의하는 데 쓴다."
현대심리학은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라이트 형제가 일군 비행도, 만델라가 추구한 인권도 확증편향의 덫을 초극했기에 가능했다. 결국 존중하는 대화만이 '인간의 자유'를 향한 유일한 길임을 이 책은 또 한 번 증명해낸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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