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일본인의 독서 사랑, 이미 천년전에 시작됐다
종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유별난 애착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일본 출판 평론가 쓰노 가이타로의 역작 '독서와 일본인'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쓰노는 60여 년간 일본 출판계에 몸담아온 베테랑 편집자다. 그는 여전히 종이책이 많이 팔리는 독서 강국 일본이 있기까지, 독서가 전 국민의 취미로 자리 잡은 과정을 헤이안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촘촘히 살핀다. 이 과정에서 소개되는 당대의 인기 서적들과 지식인들의 서재 모습, 시대별 옛 서점 풍경 등은 책을 읽는 내내 양념처럼 흥미를 돋운다.
이 책에서 조명하는 일본 독서사의 출발점은 헤이안시대(794~1192)다. 이전까지 독서는 소수 남성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고, 책을 읽는 방식도 글을 소리 내어 읽는 음독이 보편적이었다. 지금이야 소리 내지 않고 책을 눈으로 읽어 내려가는 묵독이 일반적이지만, 당시엔 소리 내지 않고 책을 읽는 게 굉장히 이상하고 심지어 음산하기까지 한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헤이안시대 중기 들어 묵독이 보편화되면서 독서문화가 확산했다. 여성들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장편소설 '겐지 이야기'를 읽고 감명을 받은 한 귀족 딸이 쓴 회상록 '사라시나 일기'(11세기 중엽)의 한 대목을 보면 당시 독서가 얼마나 깊숙이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든 취미이자 여흥이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낮에는 온종일, 밤에는 잠이 들지 않는 한 등불을 밝혀 '겐지 이야기'를 탐독했다. 그것을 제1권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방 안에 파묻혀 한 권 한 권 꺼내 읽어가는 그 기분, 황후의 자리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일본의 독서문화는 에도시대(1603~1867) 때 활판 인쇄기가 도입되며 전방위로 확산된다. 일종의 야설인 '호색일대남'(1682년)이라는 책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당시 일본의 문해율(글을 읽고 이해하는 비율)을 90%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린 견인차 역할을 한 사실은 쉽고 재미있는 콘텐츠의 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출판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메이지시대(1867~1912) 들어선 '학문의 권장'이라는 책이 당시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340만부 넘게 팔린다. 일본은 이미 150여 년 전부터 독서 강국이었던 셈이다. 책 후반부에 이르러 작가는 20세기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이 일본 출판계에 미친 영향까지 짚어낸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일본 독서사를 넘어, 책을 통해 조명한 일본 역사 이야기인 셈이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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