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인간 문명 특별하다고?..자연에 적응한 진화 과정일뿐

이용익 2021. 10. 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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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자연사 / 마크 버트니스 지음 / 조은영 옮김 / 까치 펴냄 / 2만원
인간이 인간 위주로 생각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다른 동물과 달리 문명을 건설해냈다는 자부심은 인간의 사상과 철학, 과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고 자연을 정복한 결과가 문명 그 자체라는 인식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정말로 문명이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만 이룩한 것일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이자 승리가 그대로 문명이 된 것일까.

평생 해양생태학자로 살아오며 브라운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문명의 자연사' 저자 마크 버트니스는 이런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 북서부 퓨젓사운드만에서 온갖 생물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는 모습에 매혹됐던 그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경쟁과 협력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렀고, 이런 자연의 법칙에서 인간과 인간이 만들었다는 문명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버트니스에 따르면 인류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진화시켜온 자연의 법칙에 따른 수많은 종 중 하나'고, 문명은 '인간이라는 종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해온 과정'일 뿐이다.

'문명의 자연사'는 생명과 문명, 그리고 운명까지 총 3부로 나뉘어 전개된다. 버트니스는 우주의 시작과 생명의 발생부터 문명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이전의 역사를 살펴본 뒤 인류가 어떻게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문명을 번영시킬 수 있었는지 고찰해본다. 나아가 현재 인류가 마주한 문제들의 원인을 진단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길까지 내다본다.

버트니스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사실이자 특히 인상적인 주장은 경쟁만큼이나 협력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습지의 갯줄풀과 홍합, 농게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 갯줄풀 뿌리가 안전한 둥지를 제공하고, 홍합과 농게는 질소가 풍부한 유기물을 공급하며 공생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나무를 소화하는 흰개미, 기후까지 바꾸는 열대림과 온대림 나무들의 조화 등 다양한 생물 간의 상호작용은 그저 자연에서 일어나는 귀여운 일화를 넘어 서로의 진화와 생존을 이끌어내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저자는 "우리가 다른 생물 그리고 이 복잡한 세상에 어떤 식으로 연결돼 있는지,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깨닫기 바란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종으로서의 인간을 해로운 수준으로까지 성장하게 밀어붙였던 그 관점을 바꾸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외친다. 수많은 사례를 따라가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덧 고개를 끄덕이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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