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의 효과? 스웨덴 전역에 퍼진 K-콘텐츠
오징어 게임 속 한국 놀이, 스웨덴 초중등학교에 퍼져
스톡홀름 대학교, 한국어 과정 지원자 200% 증가
학생들이 오징어 게임을 모방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 나와
스웨덴에 부는 한류가 심상치 않다. 이제껏 잔잔한 미풍에 불과했다면 이번엔 태풍이 되어 돌아왔다. 전 세계적 붐을 일으킨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스웨덴에서도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BTS 때도 기생충 때도 주목은 받았지만 마니아층을 위주로 형성된 인기였다. 그런데 이번엔 확실히 다르다. 전 연령층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직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스웨덴에서 오징어 게임을 안 들어본 이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스웨덴 지상파 Tv4 아침 교양정보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공영방송 SVT 문화 뉴스 앵커가 한류 열풍을 보도하며 ‘안녕’이라고 마무리 인사를 한다. 스웨덴 초등학생들은 운동장에서 ‘그린 라이트, 레드 라이트(green light red light,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영어 버전)’을 외치며 한국 놀이를 즐긴다. 반가움을 넘어서 기쁘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류 콘텐츠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확산
지난 10월 9일 스웨덴 국영방송 SVT 문화 뉴스(Kulturnyheterna) 기자 니나 카르탈(Nina Kartal)은 한국 문화의 확산이 폭발적으로 전 세계로 향하고 있다며 이는 BTS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보이그룹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이후라고 설명했다.
니나 카르탈은 “실제로 한국은 문화적인 강국이 되기 위해 소프트파워에 수년간 투자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으며, 이에 많은 대중이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라며 한국 문화콘텐츠의 위력을 강조했다.
최근 몇 년 간 스웨덴에서 한류 바람이 불기는 했으나 일시적이고 잔잔하게 미치는 정도였다. 기생충, 방탄소년단, 한식, K-뷰티 등이 마니아층을 형성해가며 한국 문화는 서서히 알려졌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한류 열풍을 제대로 실감케 한다.
스웨덴에서 40년 이상 거주한 한인 2세 지니 박(Jini Park) 씨는 유선 인터뷰를 통해 “그간 스웨덴에서 보도된 한국 관련 뉴스는 전쟁, 핵과 같은 북한과 관련된 정치적인 이슈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라디오에서 케이팝이 나오고 한국 영화, 드라마, 음식이 인기를 얻으며 한국의 다양한 콘텐츠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확실히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더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변화가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특히 지니 박 씨는 스웨덴의 오징어 게임 열풍은 “스웨덴에서 나올 수 없는 스토리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 빚과 같은 문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신선했다”라고 시청 소감을 말했다.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스웨덴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자본주의의 이면이 새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스톡홀름 대학 한국어학부 가브리엘 욘손(Gabriel Jonsson) 부교수가 스웨덴 지상파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행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있다. ©Tv4
스톡홀름 대학교, 한국어 과정 지원자 200% 증가해
오징어 게임 열풍에 힘입어 한국어 학습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2019년에 600여 명이 지원한 스톡홀름 대학 한국어 과정이 올해에만 1,800여 명으로 거의 200% 증가했다. 이처럼 점점 더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
스톡홀름 대학 가브리엘 욘손(Gabriel Jonsson) 한국어문화학부 부교수는 “최근 들어 스웨덴에 한국 대중문화 확산이 눈에 띄게 급증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의 인기뿐만 아니라 디지털 환경이 발전하면서 한국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에 많은 사람이 케이팝을 듣고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며 언어를 배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한국어를 3년째 배우고 있는 스웨덴 고등학생 로비사 헤스펠트(Lovisa Hessfelt)는 서면 인터뷰에서 “나는 한류가 세계의 주류가 되기 전부터 관심을 가졌다. 사실 한국 문화를 좋아했지만 그걸 대외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라고 고백했다.
로비사 씨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코리아부(Koreaboo, 한국 문화에 심취한 사람을 비하하는 말)'로 보이는 게 두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는 스웨덴에서 많은 사람이 한국 콘텐츠를 좋아하는 게 느껴져서 기쁘다고 전했다.
스웨덴 학교 전역에 퍼진 오징어 게임 금지령
오징어 게임은 스웨덴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에까지 퍼지고 있다. 특히 스웨덴 초등학생 사이에서 게임이 유행해 쉬는 시간이 되면 “그린 라이트, 레드 라이트(green light, red light,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영어 버전)”를 외칠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후드 티를 거꾸로 입고서 가면을 만드는가 하면 나뭇잎을 따다 도형을 그린 뒤에 손으로 뜯어내는 달고나 변형 놀이를 즐긴다.
스웨덴 아동 심리학자 제니 클레프봄(Jenny Klefbom)은 “아동은 자신이 겪은 일을 직접 재연하기 위해 놀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 끔찍한 것을 보면 끔찍한 게임을 시도하게 된다”라고 오징어 게임 속 놀이가 지나친 모방이 되고 있음에 우려를 표했다. 또한 오징어 게임은 어린이가 보기에 부적합한 장면들이 있다. 노골적인 폭력과 죽음뿐만 아니라 슬픔, 배신, 인류의 잔인함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시청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부모님과 함께 오징어 게임을 시청한 스웨덴 중학생 에릭 요한손(Erik Johansson)은 유선 인터뷰에서 “교내에서 느끼는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반에서 90%가 다 봤을 정도로 오징어 게임을 모르는 친구들이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 오징어 게임은 연령제한은 있지만 치솟는 인기와 궁금증으로 인해 아이들은 드라마를 시청하려고 한다.
유튜브, 인스타, 틱톡, 모바일 게임 로블룩스 등 사실 아이들이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오징어 게임 관련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현재 스웨덴에서는 16세 이하는 시청이 금지돼 있지만 중학생의 경우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제외하고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학교에서 모두가 이야기하는 주제를 나만 모를 수는 없는 것이다.
스웨덴 북부 룰레오(Luleå) 지역의 한 학교 교장은 학생들이 오징어 게임을 재연하는 것을 중단시키기에 이르렀다. “아직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게임의 의미를 모르고 따라 하고 있다”라며 쉬는 시간에 오징어 게임이 재연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또한 가정통신문을 통해 모든 보호자들에게 아이들이 게임을 하지 않도록 당부해 줄 것을 권고했다.
스톡홀름의 초등학교 교장인 리 올벨손(Lee Orberson) 역시 오징어 게임을 학교에서 금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보호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전에 스웨덴에서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있는 비교적 작은 나라로 여겨졌다. 유독 한국인 입양인이 많고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베일에 싸인 북한과의 관계가 한국을 향한 관심의 대부분이었다.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한류 콘텐츠는 스웨덴이 바라보던 기존 한국 이미지를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안녕하세요’ 한마디를 구사하는 것이 특이한 게 아니라 꽤 근사한 일이 됐다. 오징어 게임의 효과, 스웨덴에서 오래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스웨덴 예테보리 = 정수지 글로벌 리포터 suji.jung@me.com
■ 필자 소개
작가/문화칼럼니스트
현 예테보리 세종학당 교원
저서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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