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밀린 Fed 의장 선임..왜 자꾸 연기되나 [정인설의 워싱턴 나우]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정인설 워싱턴 특파원입니다. '한경 글로벌마켓' 유투브를 통해 '정인설의 워싱턴나우'를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연임 여부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더불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느림보 국정 철학'도 짚어보겠습니다.
'어·의·팔'(어차피 의장은 파월)에서 안갯속으로
8월까지만 해도 파월 의장의 연임은 거의 기정사실인 분위기였습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지의사를 밝혔고요.
한 때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크리스 도드 및 바니 프랭크 전 민주당 의원도 지지한다고 했죠. 파월 의장을 반대하던 세력이 민주당 내 진보파인데요. 이 두 사람이 진보파 원로격이어서 진보파도 상당수가 파월 의장을 반대하지 않아 파월 의장이 당연히 연임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베팅사이트 프리딕트잇에서 당시 파월 의장 연임 확률을 80% 정도로 봤습니다.
당연히 9월쯤 연임 발표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계속 늦어졌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일단 경쟁자가 생겨난 거죠. 파월 의장 바로 밑에 있는 레이엘 브레이너드 Fed 이사입니다. 이 사람은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오른팔로 불리죠. 민주당 진보파의 복심이다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사람이 파월 의장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 겁니다.
잇따른 악재..... "위험한 남자"가 부적절한 투자까지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하죠. 승승장구하던 파월 의장도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게 민주당, 특히 민주당 진보파의 작품이라는 의혹도 있지만 어찌됐든 파월 의장은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먼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이 나섰습니다. 워런 의원은 지난 9월말 상원 청문회에서 파월 의장에게 “위험한 남자(dangerous man)”라고 말했습니다. 파월이 미국 은행 시스템을 허약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금융 규제를 너무 풀어줘 약화시켰다는 거죠. 파월 의장은 운이 좋아 별일 없었는데 앞으로는 안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연임에 반대한다는 거였죠.
워런 의원의 얘긴 한 사람의 얘기는 아닙니다. 워런 의원은 미국 민주당의 진보파 의원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거죠.
강력한 규제에 힘을 실어주는 사건이 또 일어났죠. Fed 내 고위인사들의 '내로남불' 투자 스캔들이 발생할 겁니다.
Fed 내 가장 강력한 매파 인사였죠. 로버트 캐플런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가 지난해 100만달러어치의 주식을 사고 팔았고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은 총재도 부동산신탁상품을 거래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임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바로 사임했죠.
거기에 리처드 클라리다 Fed 부의장도 주식투자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급기야 파월 의장도 작년 10월 초 다우지수가 급락하기 직전에 개인 계정에서 500만달러 상당의 주식을 매각해 논란이 됐습니다.
법 위반은 아니지만 부적절한 거래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파월 의장은 바로 한 달만에 본인을 포함한 fed 고위직의 주식 채권 투자를 금지하는 내부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본인 연임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거죠.
장고 끝에 악수(惡手)도 아닌 무수(無手)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계속 Fed 의장 임명을 미룹니다.
번 버냉키 전 Fed 의장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을 했는데요. 연임될 때엔 2009년 8월에 연임이 확정됐습니다.
파월 의장이 처음 의장으로 선임된 때는 2017년 11월이었는데요. 그래도 그 전인 9월과 10월부터 후임 의장 선임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면접도 보고 하면서 1차로 후보자를 선발하고 그랬습니다. 지금은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죠.
심지어 지난달에 파월 의장 밑에 랜들 퀄스 Fed 부의장의 임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도 현재까지 공석입니다.
흔히들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하는 쪽에선 '장고 끝에 악수'라고 하는데요. 요즘 보면 아프가니스탄 철군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생각만 오래 하고 아예 해결책을 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해외 대사 인사도 미루기는 마찬가지
바이든 대통령은 국무부 고위직도 임명하지 않아 일이 안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수교를 맺은 189개국의 대사 중 100개국 가까이가 현재 공석입니다. 물론 테드 크루즈라는 공화당 의원이 인준을 방해해 임명이 늦어지는 것도 있지만 아예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을 안한 경우도 많습니다. 각국 대사 중 60개국 안팎의 대사를 임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주한 미국 대사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장애 외에 Fed 의장 임명이 늦어지는 또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지금 미국 민주당은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습니다. 진보파와 중도파로 나뉘어 사사건건 싸우고 있죠. 인프라딜 통과 갈등이 대표적이죠.
파월 의장을 미는 쪽과 브레이너드 이사를 미는 쪽으로 갈려 있습니다. 내부에선 같이 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고요. 일단 인프라딜을 이달말 10월31일까지 통과시키겠다고 하는데 과연 가능할 지도 모르겠고요. 이런 사안 때문에 Fed 의장직 임명은 계속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거죠.
11월 2일 이어 내년 중간 선거가 중대 기로
또 하나의 이유는 상원 인준입니다. 상원은 민주당 공화당 50대 50입니다. 인준을 통과하려면 60석이 필요합니다. 물론 핵옵션(nuclear option)이라는 걸 쓰면 이건 예산조정안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해 50석의 찬성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브레이너드 이사는 공화당 의원들은 대부분 반대하고 민주당 내 중도파들도 껄끄러워합니다. 그래서 상원 인준 통과가 쉽지 않습니다.
파월 의장 연임 여부 결정을 보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이나 상원 의원 시절부터 중도를 걷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신중해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대통령 돼서도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 외엔 결정을 한 게 없습니다. 항상 회의만 하고 결론은 다음 기회에입니다. Fed 의장 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이 인적 인프라. 사회복지 예산 규모를 두고 지금 엄청난 내홍을 겪고 있는데요. 이게 결론이 난 뒤 파월 의장이 연임이 되든 브레이너드 이사가 신임 의장이 되든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큽니다.
11월2일 바이든 대통령의 중간평가인 버지니아주와 뉴저지주 주지사 선거 결과도 영향을 미치겠죠. 내년 2월이 파월 의장 임기니 11월은 넘기지 않을 듯합니다.
증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인데 파월 의장의 운명도 민주당의 운명도 불확실합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가 진짜 문제인데요. 이 때 공천이나 주도권을 두고 중도파 진보파 간 갈등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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