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중국 관계 대만 문제로 긴장..전략적 선택 기로

송병승 2021. 10. 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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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중·동유럽 국가에 적극 외교..EU의회, 중국 견제
EU 지도부 '전략적 자율성' 천명..균형 외교 지향
유럽연합(EU) 의회 의사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유럽연합(EU)과 중국이 전략적 협력 관계를 모색하는 가운데 대만 문제로 다시 갈등이 불거지면서 EU 지도부가 전략적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

EU는 그동안 대만 문제에 중국이 국제사회에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면서 이 문제로 인한 중국과의 충돌은 회피하는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최근 대만이 중·동유럽 국가에 적극적인 외교 공세를 펼치고 EU 의회가 대만 입장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데 이어 EU 의회 대표단이 다음 주 대만을 방문할 예정으로 알려지면서 대만 문제가 다시 EU와 중국 간 관계를 위협하는 불씨가 되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지난 7월 자국 주재 대만 공관을 '타이베이 대표부'에서 '대만 대표부'로 격상하고 내년 초 대만에 경제무역 대표처를 설립할 계획을 밝히는 등 대만과의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대만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중국에 맞서는 조치를 잇달아 내놨다. 리투아니아는 지난 5월 중국과 중·동유럽 국가 간의 '17+1 경제협력체'를 탈퇴했고 6월에는 대만에 코로나19 백신 2만 회분을 지원하면서 중국의 강한 반발을 샀다.

슬로바키아를 방문한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 [대만 자유시보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 금지]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은 최근 슬로바키아, 체코 등을 방문해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국제사회에서 대만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 부장은 26일(현지시간) 슬로바키아 방문에서 "대만과 슬로바키아는 자유, 법치, 인권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면서 이처럼 이념이 가까운 파트너들이 현재의 양호한 기초 위에서 다방면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EU의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가 중국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개별 국가와 정당들이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EU 의회는 인권문제 등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강경한 입장이다.

EU와 중국은 지난해 말 7년간의 협상 끝에 투자협정 체결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 인권 탄압 문제를 이유로 EU 의회는 투자협정을 비준하지 않기로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EU 의회는 지난 21일 대만과의 관계를 심화하고 대만과 투자협정을 체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채택했다. EU 의원들은 대만에 있는 EU의 '타이베이 대표부'를 '대만 대표부'로 격상할 것도 요구했다. EU 의회가 대만과 투자협정 체결을 촉구한 것은 글로벌 반도체 부족 사태 속에 반도체 강국인 대만과의 경제협력 필요성이 커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EU 의회 대표단의 대만 방문 계획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EU 주재 중국 대표부 대변인은 "EU 의원들이 대만을 방문하는 것은 EU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기로 한 약속을 어기는 것이며,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고, 중국-EU 관계의 건강한 발전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하는 움직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최근 대만이 미국과 EU 등 서방 국가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통일은 역사의 대세이자 정도이며 대만 독립은 역사의 역류이자 막다른 길"이라고 강조하고 "대만이 중국의 영토라는 사실은 대만 정부라도 결코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EU와 중국은 인권 문제, 무역 마찰 등으로 긴장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강대국 간 역학 관계가 변하고 EU가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면서 관계 개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U에서는 최근 미국에 의존하는 '대서양 동맹'(미국과 유럽의 동맹) 체제에서 벗어나 다른 체제와 전략적 협력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미국의 일방적인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과 미국·영국·호주의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 출범으로 EU는 미국의 정책에 유럽의 안전을 의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전과 다른 국제정세에 직면한 EU는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줄이고 나아가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 경제적인 관계뿐 아니라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대만 문제 등 외교적 갈등에 대응하는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유럽을 중시해야 할 필요가 생겨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EU는 최근 잇따라 중국과 전략적 협력 확대 의사를 내비쳤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지난 1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에서 EU의 전략적 자율성을 언급하면서 "유럽과 중국은 정치 체제와 발전 모델이 서로 다르지만 모두 다자주의를 지지하며 코로나19 퇴치, 세계 경제 회복, 기후변화 대응, 지역 평화와 안정에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EU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엄수하며 대만 문제에 대한 정책을 변경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미셸 의장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한 것은 대만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EU 의회가 EU 지도부의 입장과는 달리 대만을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는 상황에서 EU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추 역할을 해오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퇴임을 앞두고 있어 EU 외교 정책의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재임 16년 동안 12차례나 중국을 방문할 정도로 중국을 중시하면서 경제 협력을 끌어내는 실용적인 대(對)중국 정책을 펼친 것으로 평가된다.

대만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전략적 자율성을 천명한 EU가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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