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예산 규모 절반으로 줄인 법안 제안..'바이든표 정책' 실현 위해 승부수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2021. 10. 2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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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28일(현지시간) 유럽 순방을 위해 메릴랜드주 인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전용기에 오르고 있다. 앤드루스 공군기지|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자신의 핵심 공약을 담은 인프라 법안과 사회복지 및 기후변화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민주당 진보 진영과 중도 진영이 대립하면서 몇달째 답보 상태인 두 법안의 통과를 위해 사회복지 및 기후변화 법안의 예산 규모를 당초 제안했던 것보다 절반 가까이 삭감한 절충안을 제안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국제 회의 참석차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 의회를 찾아가 의원들을 만나고 대국민 연설을 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지만 당장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취임 10개월이 지난 바이든 대통령의 국내 정책 성패를 판가름할 순간이 도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아침 의회를 전격 방문했다. 전날 예고된 일정에 없던 의회 방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하원의원들을 만나 새롭게 마련한 사회복지 및 기후변화 법안 절충안을 설명하면서 협조를 당부했다. 최초 제안 당시 3조5000억달러(약 4091조원) 규모였던 법안을 1조8500억달러로 절반 가까이 축소시킨 법안이었다. 대규모 재정 지출에 완강하게 반대하는 조 맨친·커스틴 시네마 등 중도 성향 민주당 상원의원들을 의식해 당초 안에 포함됐던 사업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거나 범위·기간을 축소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하원의원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하원과 상원의 다수당 지위와 나의 대통령직이 다음주 일어나는 일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의원들의 협조를 촉구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참석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를 포함해 누구도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면서 “그렇지만 그것이 타협이며 합의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계속해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 로마로 출발하는 일정을 수시간 늦춰가면서 자신의 주요 정책을 실현시킬 법안 통과를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것은 그와 민주당이 각종 난관에 봉착했음에도 내분을 봉합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상원은 지난 8월 민주당과 공화당의 협상을 통해 마련한 1조2000억달러(약 1402조원) 규모의 인프라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하원에서 통과시키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건강보험 및 무상보육·무상교육 확대, 아동수당 및 출산휴가 도입,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확대, 기후변화 대응 등을 위해 마련된 사회복지 및 기후변화 법안이다. 상원에서 절반의 의석을 차지한 공화당은 이 법안이 막대한 재정 지출을 초래한다면서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상원 의석 절반을 가진 민주당은 당연직 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보트를 동원해 ‘예산조정권’을 사용할 경우 공화당의 반대를 돌파할 수 있다.

민주당 상원의원 50명이 똘똘 뭉칠 경우에 가능한 방안이다. 그런데 당내 중도 성향 조 맨친·커스틴 시네마 상원의원이 사회복지 및 기후변화 법안의 규모와 일부 내용을 문제 삼으며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재원 마련을 위한 법인세 인상과 부유층에 대한 과세 강화 등에 대해서도 두 상원의원은 반대했다. 이들을 달래지 못하면 예산조정권을 활용한 법안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백악관과 바이든 행정부는 이들과 협상을 벌여왔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는 상원에서 먼저 통과된 1조2000억달러짜리 인프라 법안이라도 먼저 통과시키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그들의 정책적 우선순위를 실현시킬 사회복지 및 기후변화 법안의 상원 통과가 확실시되지 않을 경우 인프라 법안을 부결시키겠다고 맞섰다. 민주당 내의 이런 내분과 대치는 백악관과 행정부의 갖은 중재와 타협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바이든표 주요 정책을 실현시킬 법안의 입법이 지연되는 사이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벌어진 대혼란, 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인한 지속적인 방역 위기, 공급망 및 물류 병목 현상으로 인한 물가 인상 등 각종 악재들에 휩싸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지난 8월 긍정 평가보다 부정 평가가 더 많아지는 데드 크로스(하락세 전환)를 지났으며, 취임 10개월을 지나고 있는 현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외한 1980년대 이후 모든 역대 대통령들의 비슷한 시기 지지율보다 낮은 상태다. 이대로 가다간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과 하원 다수당을 모두 야당인 공화당에 내주고 남은 대통령 임기 2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에 승부수를 던지고 이날 유럽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올랐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 우리 의회로부터 신임투표를 받기를 바란다”면서 진보 진영이 1조2000억달러 규모 인프라 법안 표결에 찬성해줄 것을 촉구했다. 글로벌 법인세 인상, 기후변화 등의 주제를 집중 논의하는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미국 내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법안이 통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진보 진영은 사회복지 및 기후변화 법안 통과가 확실시되지 않는다면 인프라 법안 표결에 찬성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원에서 인프라 법안을 통과시킨다 해도 맨친·시네마 상원의원이 바이든 대통령이 새롭게 제안한 1조8500억달러짜리 사회복지 및 기후변화 법안에 100% 찬성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 상원의원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수정안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명확한 찬성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다. 민주당 내 진보 진영과 중도 진영이 이데올로기적인 벽 외에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양측의 이견이 여전하자 펠로시 의장은 이날 하원에서 인프라 법안 표결을 시도하려다 후퇴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이 던진 승부수가 첫날 승리를 거두진 못했음에도 두 법안이 곧 모두 통과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브리핑에서 밝혔다. 이처럼 민주당 내 진보 진영과 중도 진영이 서로의 발목을 잡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되기 위한 문은 점점 더 좁아들 수 밖에 없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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