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3단 연소 조기종료 원인 조사는 1000개 넘는 수신데이터 '퍼즐 맞추기'
우리 힘으로 개발한 첫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II)’가 21일 발사됐지만 위성모형을 지구저궤도에 내려놓지 못하면서 사실상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누리호는 발사 당일 성공적으로 발사됐고 고도 700km까지 올라갔지만 3단 엔진의 연소시간이 목표한 시간보다 모자라 위성을 궤도에 정상속도로 투입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3단에 설치된 7t급 액체 엔진의 조기 연소 원인으로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부분 추정에 머물고 있다. 현재까지 엔진이 연소가 조기 종료되기 전 산화제 탱크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떨어진 신호가 포착됐고 엔진 출력이 기준치 이하로 감소해 엔진이 스스로 멈췄다는 점까지만 공식 확인된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누리호 3단의 산화제 탱크 압력 저하 원인으로 가압시스템 이상 등 다양한 원인을 꼽고 있다.
○ 3단 엔진 출력 감소로 자동정지...원인은 무수히 많아
누리호는 1.5t의 실용위성을 고도 600~800km의 지구저궤도에 투입하는 것을 목표로 2010년부터 개발이 추진됐다. 독자 기술로 확보한 75t급 액체엔진 4기를 묶어 300t의 추력을 내는 1단엔진과 75t급 액체엔진 1기로 구성된 2단 엔진, 7t급 액체에진 1기로 이뤄진 3단 엔진으로 구성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초기 분석결과 누리호는 비행 당시 3단 엔진의 출력 부족으로 연소가 조기 종료된 것으로 확인된다. 출력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면서 가속도도 감소했고 이상 징후를 파악한 관성항법유도장치(INGU)가 3단 엔진을 자동으로 정지시킨 것이라는 분석이다. INGU는 누리호에 설치돼 비행을 컨트롤하는 컴퓨터다.
전문가들은 엔진 출력 감소 원인으로 꼽힐 수 있는 요소가 무수히 많아 종합적인 분석 결과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엔진의 연소압이 떨어지거나 공급되는 추진제(연료와 액체산소)의 양이 일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항우연을 비롯해 여러 전문가들은 추진제가 일정하게 공급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높게 꼽고 있다.
실제로 항우연 관계자는 "지난 22일 오전 진행된 '누리호 1차 발사 퀵리뷰'에서 계측된 일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3단 엔진 연소 당시 산화제(액체산소) 탱크의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3단 엔진 연소 구간은 중력이 거의 없어 산화제를 엔진으로 보내려면 3~4기압 압력이 가해져야 하는데 이보다 압력이 떨어지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누리호 3단부 산화제 탱크의 가압시스템은 산화제 탱크 내부에 충전된 헬륨가스가 압력을 높이도록 구성된다. 이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면 산화제가 누설됐거나 충분한 압력으로 공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가압시스템이 정상 작동했다면 산화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신의섭 전북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가압시스템이 정상이라면 산화제가 비정상적으로 떨어졌을 수 있다"고 했다. 항우연은 이와 별도로 21일 누리호 발사 직후 3단 엔진에 연료를 주입하는 터보펌프 밸브를 원인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 1000종에 이르는 계측 데이터 분석 필요...이르면 내주 정확한 원인 나올듯
누리호 시험 발사 실패 원인 분석은 원격송수신장치인 '텔레메트리'를 통해 수집한 초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누리호에는 총 5개의 텔레메트리가 있는데, 지난 26일 개별로 받은 데이터를 발사 시퀀스에 따른 시간대에 맞춰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마쳤다. 1000종에 이르는 상세 계측데이터는 현재 분석을 위해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각 담당 부서에 전해졌다. 각 부서에서 분석 후 통합 회의를 통해 좀 더 정확한 원인을 밝히는 시점은 이르면 11월 첫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항우연은 당초 3단에 설치된 7t 액체 엔진의 오작동과 결함 가능성을 낮게 봤다. 지상에서 이뤄진 7t 액체 엔진 연소 시험에서 단 한차례도 같은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우연은 올 8월까지 총 93회, 누적 연소시험 1만6925.7초에 이르는 7t 엔진 12기에 대한 연소시험을 진행했다. 다만 실제 우주환경에서 실험한 것은 처음이다. 엔진의 이상작동으로 산화제가 과도하게 유입되는 등 엔진 오작동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장영순 항우연 발사체체계개발부장은 "3단 엔진에 생긴 문제점 확인을 위해 기초 분석 작업에 착수한 상태"라며 "이 작업이 진행돼야 정확한 원인을 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분석 결과에 따라 탱크 문제로 판명되면 엔진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3단 엔진의 가압시스템 설계 변경이 필요할 경우 내년 5월로 예정된 누리호 2차 발사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3단 엔진 연소 시험과 단 분리 인증 시험을 새로 거쳐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항우연 연구원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발사조사위원회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 분석 결과에 따른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해 실패 원인을 더 정확히 규명하고 보완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방효충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주발사체는 시험 비행을 통해 기술적 보완을 거치게 된다"며 "어떤 우주발사체던 여러 번의 발사를 통해 신뢰성을 확보하고 여러 시스템들을 안정화하는 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말했다. 누리호는 약 6873억원을 들인 고도화사업을 통해 내년 발사 외에도 2027년까지 추가 4회 발사가 예정돼 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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