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30) 강철폐와 백신
20세기 중반 美 소아마비 감염병 확산
횡경막 등 목 아래 모든 근육 손상 환자
음압원리 이용한 '강철폐' 의지해 호흡
심한경우는 평생 기구에 의존해 살아
1955년 백신 개발, 소아마비 자취 감춰
감염병 백신 인류사회에 소중한 선물
거부하는 사람들 '강철폐' 갇히려는지..
워프 스피드 작전의 핵심은 높은 백신 개발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실패율을 고려해 여러 제약회사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백신을 시도하되, 그로 인한 재정적 위험은 정부가 떠맡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는 미국 백신들(화이자·얀센·모더나)은 그렇게 해서 성공한 제약회사의 백신일 뿐이고, 세 군데는 개발이 지연되고 있거나 실패했다. 길고 긴 임상 테스트 기간도 테스트 숫자를 늘려 단축했기 때문에 개발 기간이 짧아도 그 검증은 여느 백신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적인 제약사들을 보유한 미국이 개발된 지 수십년이 된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백신이 있다. 바로 소아마비 백신이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에도 소아마비를 앓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쪽 혹은 양쪽 다리가 성장을 멈춰서 보행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소아마비를 앓았구나’하고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낯설지 않은 질병이었다. 물론 지금은 과거와 달리 아이들, 아니 젊은 층에서는 소아마비를 앓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바이러스(poliovirus)를 예방하는 백신이 보편화된 덕이다.
이를 위생가설로 설명하는 학자들이 있다.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는 폴리오바이러스가 흔해서 갓난아기들 몸에 들어갔는데, 환경이 점점 깨끗해지면서 아이들이 밖에 돌아다니는 나이에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갓난아기들은 엄마에게서 받은 항체 때문에 면역력이 강해서 폴리오바이러스를 쉽게 이겨내는데, 걷기 시작할 때 즈음에 들어온 바이러스는 발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소아마비라는 이름과 달리 성인도 감염될 수 있는데, 일단 병에 걸릴 경우 성인의 치사율은 아이들보다 5배 이상 높다.
미국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서너 차례 소아마비가 휩쓰는 에피데믹(epidemic : 전 세계로 퍼지는 팬데믹과 달리 한 지역이나 국가에 퍼지는 감염병)이 있었다. 특히 1952년의 소아마비 에피데믹은 미국 사회를 공포 상태로 몰아넣었다. 오죽했으면 “원자폭탄 다음으로 큰 공포”라는 말이 나왔을까. 3만5000명의 확진자가 쏟아졌고, 그중 대부분이 밖에서 뛰놀던 어린아이들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크게 앓지 않고 넘어갔지만, 많은 수의 아이들이 마비를 겪었다. 그런데 폴리오바이러스는 때로는 환자의 횡격막을 공격하거나 호흡에 필요한 근육을 손상시키기도 하는데, 이 경우 환자는 호흡을 하지 못해 산소공급이 끊겨 질식사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는 두 가지 걱정이 있다. 하나는 그가 평생 사용해온 강철폐가 낡아서 바람이 새는데 이제는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교체할 부품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찾아와 새로운 부품을 직접 깎아 만들어 강철폐의 수명을 연장해주었다.
다른 하나는 더 심각하다. 소아마비는 1955년에 조나스 솔크(Jonas Salk, 한국에서는 ‘소크’로 알려져 있지만 솔크가 맞다) 백신 개발을 완료해서 이후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지만, 근래 들어 백신에 대한 허위정보를 믿고 아이들에게 소아마비를 비롯한 모든 백신의 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들이 크게 늘면서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온라인 모임이 만들어진 적이 있고, 아직도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아이들을 위험에 몰아넣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해서 과거에 사라졌던 감염병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알렉산더는 강철폐 안에 있는 자신을 보라며 소아마비는 절대 쉽게 생각할 질병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병원마다 인공호흡기가 모자라자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강철폐를 다시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강철폐는 감염병이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음을, 그리고 백신이 인류사회에 소중한 선물임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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