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모드 박찬희, '박찬물 NO' 보일러 터졌다
3점슛 제도가 도입된 이후 3점슛은 가장 위력적인 공격 옵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왔다. 2점슛보다 확률은 떨어지지만 한번 공격에서 더 많은 점수가 가능하다는 점, 직접적으로 포스트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득점이 가능한 부분 등은 큰 메리트였다. 높이의 스포츠 농구에서 혁명과도 같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공간 활용과 다양한 전략 전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농구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는 평가다.
때문에 외곽슛 능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예전보다도 더 낮은 평가를 받는 분위기다. 특히 포지션이 가드, 포워드라면 더욱 그렇다. 빅맨에게도 3점슛이 요구되는 시대에서 계륵 취급까지 받기 십상이다.
물론 부족한 3점슛에도 불구하고 다른 능력을 앞세워 선수 생활을 길게 가져간 선수도 있다. 신명호(38·183cm), 양희종(37·194㎝) 등이 대표적으로 그들은 리그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3점슛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포지션 대비 최고 디펜스 능력을 앞세워 수비 스페셜리스트로 불렸다. 어찌보면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외곽슛이 함께했더라면 선수로서 완성도가 더 높아졌을 것이 분명하기에 아쉬움도 남는 것이 사실이다.
허재 전 KCC 감독이 ‘슛만 갖춘다면 연봉 5억원짜리 선수가 될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한창때 신명호는 수비수로서 가치가 높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명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수비‘가 아닌 ’슛 없는 남자‘이미지다. 상대 팀에서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인지라 신명호에게 외곽찬스가 가면 대놓고 버려두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가스공사 유도훈 감독이 작전타임 중에 얘기한 "신명호는 놔두라고!"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언이 된 지 오래다.
신명호 만큼은 아니지만 양희종 역시 저조한 외곽슛으로 인해 공격시 견제를 덜 받는 축에 속한다. 큰 경기에 강해 승부처에서 외곽슛이 터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양희종이 외곽슛만 제대로 갖췄어도 ’역대 포워드‘논쟁에서 상위권에 위치했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 젊은 선수 중에서는 KT 박지원(23·191㎝)이 신인 시절부터 3점슛으로 애를 먹은 바 있다.
최근 몇 시즌 동안 외곽슛으로 인해 고통받은(?) 대표적 선수로 DB 박찬희(34·190㎝)를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KGC 유니폼을 입은 그는 팀 동료 이정현을 제치고 2010~2011 시즌 신인왕에 오르는 등 프로 첫 해부터 펄펄 날며 범상치 않은 재능을 뽐냈다. 좋은 시야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리딩, 속공전개 능력이 인상적인 정통파 1번이면서도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질풍처럼 파고들어 상대 수비진을 찢어버리는 슬래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박찬희는 자신만의 확실한 경쟁력이 있었다. 190㎝ 장신 퓨어가드는 예전은 물론 현재까지도 드물다. 거기에 운동능력,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대인 수비에서도 강점을 보였던지라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용됐다. 그야말로 토털패키지같은 존재였다.
모 유명 개그맨이 예능 프로에서 입버릇처럼 내뱉은 말이 있다.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할 수 있습니다‘. 박찬희가 딱 그랬다. 부족함 없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지만 슈팅력 하나가 부족했다. 더불어 그 부분은 선수 생활 내내 박찬희의 발목을 잡았다.
포인트가드에게 슈팅력은 필수다. 슈터 수준으로까지 요구되지는 않더라도 오픈 찬스가 왔을 때 준수한 확률로 성공시켜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단순히 팀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픈슛이 들어가야 수비가 자신을 경계하고 돌파든 패싱게임이든 다른 플레이가 원활해진다. 슛이 일정 수준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상대가 수비하기 쉬워져 다른 잘하는 것까지 함께 다운될 수 있다. 반면 슈팅력이 좋은 1번은 그로 인해 다른 부분에서까지 반사이익을 받는다. 신기성, 김낙현 등이 대표적 케이스다.
신인 시절만 해도 박찬희가 이 정도까지 외곽슛으로 애를 먹을 줄은 예상하기 힘들었다. 정교하지는 못해도 자신에게 찬스가 오면 어느 정도 성공시킬 정도는 됐다. 첫 시즌 133개를 던져 40개(30.08%)를 성공시킬 때까지만 해도 무난한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당시 40개는 박찬희가 지난 시즌까지 10시즌 동안 가장 많이 성공시킨 3점슛 개수다. 시도횟수도 적었을뿐더러 최고 성공률이 32.23%에 불과할 정도로 질과 양적으로 모두 안 좋았다. 그간 거둔 3점슛 성공률(올 시즌 제외)도 24.34%에 그치고 있다. 3점슛을 포기했다는 혹평을 받고 있는 신명호의 22.95%와도 별반 차이나지 않는다. 얼마나 박찬희의 외곽슛이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박찬희에게는 ’박찬물‘이라는 별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 실책과 어이없는 슛 미스가 나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해서 붙여졌다. 지난 시즌에는 45경기 동안 41개를 던져 6개(14.63%)만을 성공시키는데 그쳤다. 이쯤되면 3점슛이 봉인된 상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DB로 둥지를 옮긴 올 시즌 박찬희는 확 달라졌다. 시즌 초이기는 하지만 평균 8득점, 6.1어시스트(전체 2위), 3.1리바운드, 1.9스틸로 펄펄 날고 있다. 박찬희의 활약에 힘입어 소속팀 DB 또한 SK와 함께 공동 1위에 올라있다. 박찬희가 부활 모드로 들어서자 DB 앞선이 몰라보게 탄탄해졌다.
여기에는 약점이던 3점슛이 강화된 부분이 크다는 평가다. 올 시즌 박찬희는 찬스에서 머뭇거리던 예전과 달리 외곽슛을 쏴야 될 때는 과감하게 던진다. 그 결과 7경기에서 매경기 1개씩을 적중시키며 더는 외곽에서 버리는 수비를 하기 어렵게 됐다. 성공률은 무려 41.18%에 이른다.
물론 시즌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더 이상 슛이 없는 가드가 아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적어도 올 시즌은 꾸준하게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슈팅 약점으로 인해 박찬물로 평가절하 받아온 박찬희가 뜨거운 보일러처럼 3점슛을 펑펑 터트리며 부활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 김종수 객원기자
#사진 /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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