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회사명 '메타'로 바꾼다.. 저커버그 90분간 '메타버스 원맨쇼'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 2021. 10. 2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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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실밸 레이더]
추락한 이미지 세탁용이란 분석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가 메타버스 사업을 강화하며 회사명을 '메타'로 바꾼다고 발표하고 있다. /페이스북

“이제 우리에겐 페이스북이 1순위가 아니다. 메타버스가 새로운 미래가 될 것이다.” 28일(현지시각)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CEO는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페이스북이 사명을 ‘메타(Meta)’로 바꿨다. 최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5년 후에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기업으로 인식되길 원한다”며 메타버스 사업을 강화했는데, 이번엔 아예 회사명을 바꾼 것이다. 저커버그는 “현재 우리 사명은 페이스북이라는 하나의 제품만 나타내고 있어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다양한 일을 대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페이스북은 VR·AR 관련 연례 행사인 ‘커넥트 콘퍼런스’를 열고 1시간 30분 동안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발표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이다. 사용자의 아바타가 새롭게 창조된 온라인 공간에서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면 쉽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직원들과 함께 메타버스에서 구현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페이스북

저커버그는 이날 온라인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사실상 ‘원맨쇼’를 했다. 혼자서 메타버스의 정의와 페이스북이 출시하는 메타버스 서비스를 소개하고, 직접 메타버스를 결합한 펜싱 게임을 했다. 한 직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사용자 프라이버시 보호책을 안내했으며, 메타버스 공간 개발자에게 기자처럼 관련 질문을 던졌다. 보통 빅테크 기업들의 컨퍼런스나 신제품 발표회에서 CEO들이 잠깐 잠깐 나와 개발자나 마케터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업계에서는 그만큼 메타버스에 대한 저커버그의 집념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블룸버그는 “메타버스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페이스북이 가장 중요한 시그널을 공개했다”고 평가했다. 페이스북 주가는 전날보다 1.51% 상승 마감했다.

메타버스 내에서 구현되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의 아바타. /페이스북

◇“메타버스는 인터넷 다음 단계”

마크 저커버그는 이날 메타버스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도대체 메타버스가 뭐냐’고 묻는다”며 “이는 인터넷 클릭처럼 쉽게 시공간을 초월해 멀리있는 사람과 만나고 새로운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인터넷 다음 단계”라고 했다.

저커버그는 이날 메타버스를 활용한 서비스인 회의실 형태의 ‘호라이즌 워크룸’, 집 형태인 ‘호라이즌 홈’, 많은 사람들이 아바타 형태로 모여 교류하는 광장 형태인 ‘호라이즌 월드’ 등을 소개했다. 그는 “메타버스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며 “미래에는 출퇴근할 필요 없이 사무실로, 친구와 콘서트장 등으로 홀로그램을 통해 즉시 텔레포트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메타버스는 존재감을 느끼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먼 곳에 있는 사람과 현재 함께 있다고 느끼는 존재감은 소셜 테크놀로지의 궁극적인 꿈”이라고 했다.

페이스북이 소개한 메타버스의 한 모습.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친구와 메타버스를 통해 체스를 두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날 페이스북이 소개한 메타버스 세계는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모습이었다. 실제 안경과 똑같이 생긴 것을 끼면 눈 앞에 홀로그램으로 각종 화면과 3D 그래픽이 뜬다. 손가락으로 이를 클릭하고 홀로그램을 돌려보다가 동료에게 전화를 하면, 먼 곳에 있는 동료의 아바타가 눈 앞으로 소환된다. 아바타 형태의 친구들과 둘러앉아 카드 게임을 할 수 있고, 아바타끼리 탁구를 치거나 3대 3 농구를 할 수도 있다. 저커버그는 “우리는 메타버스를 위한 하드웨어 개발에도 열중하고 있다”며 “성능도 좋고, 보기에도 좋으며, 착용하기 수월한 기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을 위한 다른 제작자와 개발자의 동참을 호소했다. 메타버스용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를 육성하기 위해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저커버그는 “우리는 10년 안에 10억명의 인구가 메타버스를 사용하고, 수조달러의 디지털 커머스 생태계가 구축되며, 수백만개의 크리에이터와 개발자 일자리가 생기는 것을 희망한다”고 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가 메타버스 사업을 강화하며 회사명을 '메타'로 바꾼다고 발표하고 있다. /페이스북

◇페북 버리고 메타버스로 달려가

페이스북이 사명을 변경하며 메타버스로 달려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AR·VR(증강·가상현실) 기기가 발달하고, 관련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메타버스 관련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메타버스 게임 로블록스에서 사용자들은 플랫폼 내 전용 화폐인 로벅스를 쓰는데, 올 2분기 사용자들이 로블록스를 사들인 금액만 6억7000만달러(7800억원)다.

기업들도 메타버스 안에서 채용 설명회를 진행하거나 발표회를 하는 등 전 산업적으로 메타버스 활용도는 높아지고 있다.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는 2025년까지 메타버스 관련 시장 규모가 최소 820억달러(약 96조원)가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페이스북은 이러한 메타버스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각오다.

페북은 메타버스 구축을 위해 향후 5년 내 유럽에서 1만개의 새로운 고급 기술 인력을 채용하기로 했고, 내년엔 새로운 VR 헤드셋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페이스북의 VR 기기인 오큘러스도 브랜드 이름을 메타로 바꾼다. 페이스북 증강 및 가상현실 사업 담당 앤드류 보스워스 부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내용을 밝히고, “앞으로 몇 개월 동안 페이스북의 모든 관련 제품과 서비스 브랜드를 메타로 바꾸는 것을 단계적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28일(현지시각) 미 실리콘밸리 멘로파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 앞 상징물이 바뀌었다. 이 조형물엔 원래 페이스북을 상징하는 엄지척 좋아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새로운 회사명인 메타 로고로 교체됐다. /AFP 연합뉴스

◇추락한 이미지 세탁용?

일각에선 페이스북이 내부고발로 인해 추락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사명 변경을 추진한다고 본다. 최근 페이스북은 자사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해악성을 알면서도 수익성을 위해 이를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페이스북이 가짜뉴스와 혐오 게시물을 퍼뜨리는 채널이 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거세다.

테크 업계에서는 페이스북의 사명 변경을 이러한 과거와 결별하고 새롭게 사업을 일구겠다는 의지로 해석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사업의 구조적 재편성을 널리 알리거나 회사의 나쁜 평판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 리브랜딩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2015년 구글은 여러 사업부를 분할하는 작업을 추진하면서 모회사인 알파벳을 만들었다. 뉴욕타임스는 “사명 변경은 현재 페이스북이 직면한 여러 논쟁에서 페이스북을 한발 떨어지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은 이번 사명 변경을 추진하며 마크 저커버그의 리더십을 유지했다. 구조조정이나 기타 경영진 변경도 발표되지 않았다. 제니퍼 그라이기엘 시라큐스 대학 부교수는 “저커버그가 자신의 회사를 뭐라고 부르던간에, 저커버그가 권력의 일부를 양도하거나 다른 리더십을 구축할 때까지 이 회사는 ‘저커버그 주식회사’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페이스북 내 문제를 발생시킨 마크 저커버그의 독단적 리더십이 새로운 회사인 ‘메타’에서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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