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국·타이완 '우리는 깐부'..미·중 관계 미칠 파장은?

이랑 2021. 10.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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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훈련 중에 잡초를 뽑고, 타이어를 옮기고, 낙엽을 쓸었다. 사격술 이외 대부분 교육이 의미가 없었다." (20대 타이완 남성의 군 복무 경험 인터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타이완 젊은이들도 우리처럼 군대에 갑니다. 의무 복무입니다. 기간은 2년, 하지만 기초훈련 4개월 받고 나면 나머지 기간은 예비군으로 편입되는 식입니다.

예비군에는 220만 명이 편성돼 있지만, 훈련은 1∼2년에 한 번 정도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8년 타이완 육군이 공개해 '딸기군' 논란이 일었던 사진. 훈련받는 병사가 스티로폼에 엎드려 있고 옆에는 파라솔이 설치됐다. (출처: 왕이)


의무 복무를 마친 한 20대 남성은 "타이완군을 '딸기군'"이라고 말했습니다. 타이완 군대가 정말 중국군을 막을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도 했습니다.

'딸기군'은 '타이완 딸기 세대'에서 나온 말인데요. '딸기 세대'는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상처받는 1981년 이후 출생한 청년층을, 가벼운 부딪힘에도 잘 문드러지는 딸기에 빗대 만들어진 말입니다.

현지 시간 10월 26일 월스트리트저널 해설기사를 통해 전해진 인터뷰 내용입니다.

군대가 딸기처럼 무르다면 대체 어떤 상황인 걸까요?

■"타이완군, 억지력 약화 중"…타이완 총통은 "미국이 도와줄 것"

월스트리트저널은 타이완 군인과 군 관계자 등의 의견을 종합해 중국 침공에 대한 타이완군의 방어 태세와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과 타이완의 갈등 수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데, 기강도 해이하고 사기 저하도 심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배경으로 '위기 시에 미국이 나설 것'이라는 추측, '미국 같은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중국이 침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을 꼽았습니다.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 (출처: 연합)


공교롭게 바로 다음 날(현지 시간 27일), 차이잉원(蔡英文) 타이완 총통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미군이 타이완의 방어를 도울 것으로 정말로 믿는다."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 인터뷰, 미국 CNN)

그리고 이례적으로 현재 미군이 타이완군을 돕기 위해 타이완에 주둔해 있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생각하는 것만큼 많지 않은 수"라며 구체적인 규모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타이완 최고 지도자가 미군 주둔 사실 자체를 확인한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월 21일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하면 미국이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지 정확히 엿새만입니다.

차이 총통은 그러면서 "중국으로부터 위협은 매일 커지고 있다. 타이완의 방어 능력을 증강할 목적으로 미국과 광범위한 협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모호한 입장을 견지해온 타이완 방어 공약에 대해 타이완 최고 지도자가 미국의 지원을 대놓고 언급한 것입니다.

■미국도 "타이완 건들지 마" 중국 겨냥

같은 날 이번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다자 정상회의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미국은 타이완에 바위처럼 단단한 약속을 했다. 우리는 타이완해협에 걸친 중국의 강압적 행동에 깊이 우려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영상 연설 중)

이 회의에는 리커창 중국 총리도 참석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리커창 중국 총리도 참석했다. (출처: 연합)


중국이 보는 앞에서 타이완 을 향한 중국의 행동을 '강압적'이라고 지적하고 이런 행동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신장과 티베트의 인권, 홍콩 주민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겠다며 중국의 인권 문제도 언급했습니다.

모두 중국이 그동안 '내정 간섭'이라며 수차례 반발했던 포인트만 골라서 지적한 셈인데요.

리커창 총리는 미국과 타이완의 관계에 대해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남중국해 갈등 해결과 관련해서 '당사국 주의'를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이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미국과 타이완은 '깐부'…반발하는 중국

타이완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상치 않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표현해보자면 미국과 타이완은 이제 대놓고 '깐부'라는 걸 공표했고 중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과 타이완은 원래도 친밀한 사이입니다. 하지만 '이만큼'은 아니었습니다.

타이완 해협 통과하는 미 해군 구축함 존 S. 매케인함 (대만해협 AP=연합뉴스)


미국은 타이완은 한미상호방위조약처럼 유사시 군사 개입을 담은 조약을 맺고 있지 않습니다.

원래 군사 개입이 포함된 조약이 있었지만 1979년 미국이 타이완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면서 군사 개입 약속은 사라졌습니다. 당시 타이완에 있던 미군도 철수했습니다.

그 뒤 타이완과 미국 사이에는 '타이완 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이 만들어졌고 미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취해 왔습니다.

유사시 타이완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근거는 만들어 놓되 군사 개입을 할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모호하게 유지해 왔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 또 차이 타이완 총통의 발언 둘 다 큰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미국은 '타이완을 적극 방어해주겠다'고 정책을 바꾼 것이고 타이완은 '미군의 자동 군사 개입'을 위한 초석을 깐 것 아니냐는 겁니다. 이제는 '진정한 깐부'가 되는 셈이죠.

■미국·중국 관계 최대 위기?

중국은 거칠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중국 국방부는 " 당과 인민이 필요로 할 때 바로 참전할 수 있다.",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도록 하겠다."라고 발표했고, 중국 외교부는 "타이완 독립을 하는 것은 죽음의 길"이라며 격앙된 모습입니다.

출처: 연합


중국의 그동안 입장을 살펴보면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중국 본토 대륙과 홍콩, 마카오, 타이완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 따라서 합법적인 중국 정부 역시 하나라는 원칙입니다.

또 그동안 계속해서 타이완 문제를 자국의 최우선 '핵심 이익'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타이완은 '하나의 중국'을 흔들고, 미국은 '핵심 이익'에 간섭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 타이완의 전략적 가치가 이전보다 커진 상황입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영상)이 연내 예정돼 있습니다.

두 사람은 과연 이견을 조율할 수 있을까요?

이랑 기자 (her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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