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패배자입니다만..승격, 그거 인생 걸고 합니다
현대 스포츠는 화려한 성공담으로 가득하다. 스포츠 스타들은 에스엔에스(SNS)에 비싼 차와 사치스러운 파티를 공개하고 미디어는 이를 집중 조명한다. 선수가 버는 돈이 곧 그 선수의 가치가 된다. 이런 시대에 “나는 패배자”라는 고백으로 단번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선수가 있다. K리그2 대전 하나시티즌 이시다 마사토시(26·등록명 마사)가 그 주인공이다. <한겨레>는 서면으로 마사를 인터뷰했다.
일본 출신 마사는 고교 축구 유망주였다. 2014년 교토상가FC에 입단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임대를 전전했다. 결국 2019년 쫓겨나듯 한국에 와 K리그2 안산 그리너스로 이적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 팀에는 통역사도 따로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왔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컸던” 시절이었다.
마사는 절박했다. “이곳에서도 실패해선 안 된다는 각오를 다지며” 새 환경에 적응하려 했다. 한국 축구는 그가 일본에서 배운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축구에 대한 이해도, 플레이 스타일도”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한국어 공부도 빼놓을 수 없었다. 통역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공부)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특히 “한 달 반 정도 경기에 나가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축구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처절한 심정으로 “영상을 보며 정말 많이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바뀔 수 있을지, 골을 넣을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다.
진솔한 그의 노력에 하늘도 감동한 걸까. 그는 어느 순간 “내가 지금까지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유레카’의 순간을 맞이한 그는 “그 길로 감독님에게 가서 ‘못하면 잘라도 되니, 뛰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돌아봤다. “정말로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얻은 기회. 마사는 마지막 13경기에서 9골을 몰아넣으며 반전 드라마를 썼다. 그의 “축구 인생 터닝 포인트”였다.
막판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K리그2 수원FC로 이적했다. 27경기 10골을 넣으며 팀에 1부리그 승격을 안겼다. 2부리그 최고의 골잡이로 떠오른 마사는 올 시즌을 앞두고 1부리그 강원FC로 이적했다. 인생이 동화와 같다면, 그 뒤로 마사에게는 행복한 미래만 펼쳐져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마사는 개막전에서 전반 5분 만에 득점 찬스를 놓치며 부상까지 당했다. 이후 9경기 무득점에 그쳤다.
“많이 힘든 시간”이었지만 포기는 없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임대를 통해 2부리그 대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2부리그에 돌아온 마사는 팀의 승격을 위해 뛰고 또 뛰었다. 마침내 그는 지난 10일 한국 친정팀인 안산과 경기에서 프로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생애 최고의 경기를 펼친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승격을 원하는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질문을 받았고, 마사는 한국말로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축구 인생에서 패배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매 경기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경기가 있고…. 어쨌든 승격, 그거 인생 걸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치 일본 소년만화 주인공처럼 진심이 가득 담긴 답변이었다.
마사의 인터뷰 영상은 단숨에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특히 마사의 성실함과 한국말을 배우기 위한 노력 등이 알려지며 더욱 화제가 됐다. 한 방송사 유튜브 채널에선 이미 조회수가 123만회를 넘겼을 정도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고, 다시 그에게 응원을 건넸다. 고된 삶에 지친 이들은 일본에서 온 축구 선수, 아니 한 인간의 진솔한 고백에 열광했다. “이게 바로 스포츠다”, “삶의 용기를 얻었다”는 등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평소 성격상 자기 영상을 보지 않는다는 마사. 그는 당시 인터뷰가 “이렇게 화제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경기 후 많은 팬 여러분이 메시지를 통해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라고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셨다”면서 “감사하다. 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마사는 또 “인생에 완전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야 5%쯤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누구나 각자가 처한 환경 속에서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용기를 나눴다. 또 “무엇보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축구를 하고 싶다”면서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팬 여러분도 경기장에 오셔서 우리 팀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일본 속담엔 ‘차가운 돌도 3년을 앉아있으면 따뜻해진다’는 말이 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복이 온다는 의미다. 한국 생활 3년 차. 마사는 올 시즌 대전에서 13경기에 출장해 벌써 9골을 넣었다. 해트트릭을 기록한 33라운드와 멀티골 활약을 펼친 35라운드 때는 라운드 최우수선수(MVP)에도 꼽혔다. 마사의 활약에 대전은 뒷심을 발휘하며 리그 3위(승점 58)까지 올라섰다. 승격 가시권이다.
마사의 간절한 바람처럼 대전이 올 시즌 승격에 성공할 수 있을까. 누구도 장담할 순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마사는 그의 다짐대로 앞으로도 인생을 걸고 매 경기를 뛸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할 거란 사실이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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