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m 절벽서 맨몸 점프.. "한국 대표로 메달 딸게요"

정병선 기자 2021. 10. 2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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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m 높이에서 시속 100㎞ 가까운 속도로 뛰어내리면 마치 우주에서 지구로 막 진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이다이빙(High Diving)은 자칫 잘못하면 생명도 잃을 수 있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2019년 광주 세계선수권 때 처음 국내에 선보였는데, 출전한 35명의 ‘강심장’ 중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국내엔 정식 등록선수가 없다. 최병화(30)씨는 ‘첫 한국인’ 하이다이버의 꿈을 좇고 있다.

“2014년 조선일보 주최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에 참가해 독일 브란덴부르크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1만5000㎞를 100일 동안 자전거로 달렸죠. 한민족의 시원지(始原地)로 알려진 바이칼호수 알혼섬 바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들었어요. 그때 뭔가 특별한 기운을 느꼈어요. 그 자유로운 기억이 저를 하이다이빙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최씨는 “여섯 살 때 할아버지 손에 끌려 유아스포츠단을 찾은 그때부터 물과 긴 인연이 시작된 것 같다. 할아버지는 늘 내게 남자답게 살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3위, 1954년 필리핀 마닐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단 사상 첫 금메달(육상 1500m)을 딴 최윤칠(작년 작고)씨다.

최씨는 초등학교 때 수영선수로 뛰었고, 대학 땐 조정 선수로 활약했다. 해병대 수색대 전역 후엔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해 국내 대회를 휩쓸었다.

하이다이버의 꿈을 키우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하이다이빙 규격에 맞는 훈련시설이 국내엔 없다. “해외 선수들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기본기와 기술을 익혔어요. 훈련할 곳이 없어 울릉도, 여수, 제주도 절벽에서 뛰어내렸죠. 국내엔 지도자가 없어 해외 캠프에 참가해 귀동냥이나 더부살이로 기술을 배웠고요.”

국내 1호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가 울릉도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장면을 다중 촬영한 모습. 국내에 하이다이빙 연습장이 없어 실전 훈련을 위해선 위험을 무릅쓴 채 절벽에서 다이빙을 해야 한다. /최병화씨 제공

최씨는 2017년 전국 마스터스 선수권 다이빙 3관왕, 2019 광주 세계선수권대회에선 마스터스 부문 3m, 10m에서 우승했다. 최씨는 “광주 세계선수권 때 하이다이빙 선수들에게 수건과 물을 건네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상급 선수들 경기를 보면서 도전 의지가 더욱 불타올랐다”고 했다. 그는 2019년 중국 자오칭, 2021년 오스트리아 하이다이빙 캠프에 참가하면서 기량을 닦았다.초등학생과 일반인 대상으로 생존수영과 응급처치 강의를 하며 해외 캠프 경비를 마련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최씨는 “재작년 신기술을 습득하다 측면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왼쪽 고막의 80%가 손상되는 중상을 입었다”고 했다.

6년여간 준비 끝에 오는 12월 UAE(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최종 예선에 출전하려 했던 최씨는 최근 FINA로부터 출전 불가 통보를 받았다.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종목 특성상 네 가지 동작 영상이 필요한데 그중 한 가지가 부족했다고 한다. 국내에는 영상을 촬영할 시설이 없고 시간도 부족해 아쉽게 꿈을 미뤄야 했다. 하지만 내년엔 반드시 도전한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언젠가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거는 꿈을 꿉니다. 반드시 보여드리고 싶은 사람이 두 분 계셔요. 먼저 제 인생에 가장 큰 사랑을 주신 할아버지 영전에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3년 전 히말라야 원정 중 뜻밖의 사고로 돌아가신 김창호 전 유라시아 원정대장님. 제 멘토였던 그분 빈소를 찾아 약속드렸습니다. 반드시 세계적인 하이다이버가 되어서 찾아뵙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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