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어 폴렉시트 오나… 폴란드, EU와 정면 충돌
폴란드와 유럽연합(EU)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EU 회원국인 폴란드의 집권 여당이 잇따라 강경 보수 정책을 밀어붙이자 유럽 공동체의 가치를 내세운 EU가 급제동에 나섰고, 이에 폴란드가 강력 반발하면서 한 치 양보 없는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상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에 이어 폴란드의 EU 탈퇴를 뜻하는 ‘폴렉시트(Polexit)’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U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27일(현지시각) “폴란드 국가사법평의회(NCJ)의 기능을 중단하라는 EU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폴란드에 하루 100만유로(약 13억6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1952년 ECJ 가 출범한 이래 회원국에 매긴 벌금 중 최고 액수로, 폴란드가 EU 명령을 이행할 때까지 계속 부과된다. NCJ는 폴란드 집권 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이 작년 1월 자국의 사법 개혁을 추진하겠다며 만든 폴란드판 공직수사처다. 의회와 정부가 임명한 평의회 위원들이 판사를 조사해 해임할 수 있다.
이에 대해 EU는 지난 7월 “NCJ가 법치와 민주주의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며 ‘기능 중단’ 명령을 내렸다. 폴란드 내에서도 야권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집권 여당의 사법 장악 음모”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지난 7일 “국내법보다 EU 법을 우선한 EU 조약 내용은 위헌”이라고 판결, NCJ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폴란드와 EU의 마찰은 지난 2015년 폴란드 극우 성향의 PiS가 집권한 이후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반(反)난민, 반(反)공산당, 가톨릭 보수주의 색채가 강한 PiS는 난민과 동성 결혼, 낙태 등의 이슈를 놓고 EU와 계속 부딪치고 있다. 폴란드 정책에 대해 EU가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 “탈퇴하겠다”며 으름장도 놓는다.
최근 폴란드의 강경 드라이브를 이끌고 있는 ‘폴렉시트의 남자’는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다. 그는 재무장관 시절 “폴란드가 EU의 노동력 공급처로 전락, 경제적으로 종속됐다”는 등의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고, 2017년 총리에 올랐다.
그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지난 19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폴란드에 배정된 경제 보조금(약 300억 유로·41조원) 지급을 보류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재하겠다”며 경고하자, 그는 “EU가 폴란드 머리에 총을 겨눴다”고 거칠게 응수했다. 그러면서 “EU가 폴란드를 상대로 유럽에 ‘3차 대전’을 일으키면 우리도 모든 무기를 동원해 폴란드의 권리를 보호할 것”이라고도 했다. 모라비에츠키의 집안 내력도 그가 극우 성향 세계관을 갖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그의 아버지 코르넬 모라비에츠키는 과거 반(反)공산주의 투쟁 연대 지도자였다.
하지만 모라비에츠키가 실제로 폴란드를 EU 탈퇴라는 극한적 상황까지 몰고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실제로 그는 “폴렉시트 가능성은 없을 것”이란 발언도 하고 있다. 우선, 폴란드 국민의 다수가 EU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인의 80%가 EU 잔류를 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최근엔 시민 10만명이 참여한 폴렉시트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EU에서 탈퇴했을 경우 폴란드 경제가 엄청나게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폴란드는 2014~2020년 1058억유로(약 144조원)에 달하는 EU 보조금을 받았다. 회원 27국 중 최고다. 지난해에는 폴란드 국내총생산의 약 4%에 해당하는 180억유로를 받았다. 폴란드 재무부는 “EU의 경제 지원이 폴란드 경제 성장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금융·경제 전문가인 모라비에츠키는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대와 스위스 바젤대에서 경영·경제를 공부하고, 독일 도이체방크에서 일한 뒤 폴란드 자호드니WBK 은행장을 지냈다. 함부르크대에서 EU 법을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폴란드의 EU 가입 준비위원회 부국장을 맡았고, 폴란드의 EU 가입에도 큰 기여를 했다. 지금은 ‘반 EU’로 행세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 EU’ 인사였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폴렉시트 위협이 “청년 소득세 면제와 최저임금 78% 인상 등 자신의 경제정책을 위해 더 많은 EU 보조금을 받아내려는 시도”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만약 폴란드의 EU 탈퇴가 현실화될 경우, EU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 주간 렉스프레스는 “조약 내 규정에 따라 ‘질서 있는 퇴장’을 한 영국과 달리, 막대한 보조금을 받으면서 EU의 규칙을 거부한 폴란드의 막무가내식 탈퇴는 EU의 회원국 통제력을 약화하고, 도덕적 해이마저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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