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 미군 주둔 첫 인정... 中 “스스로 죽을 길 찾는 것”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대만군 훈련을 위해 소수의 미군이 대만에 머물고 있다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간 미군 특수부대가 대만군을 훈련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대만 정부는 이를 부인해왔다. 대만 주둔 미군의 철수는 1970년대 미·중 관계 정상화 당시의 핵심적인 합의여서 차이 총통의 이번 언급이 중국과 대만 관계는 물론 미·중 관계에 큰 파문을 몰고 올 전망이다.
차이 총통은 27일(현지 시각) 미국 CNN 방송 인터뷰에서 “대만의 방어 능력을 증강할 목적으로 미국과 광범위한 협력을 하고 있다”며 미군의 대만 주둔 사실을 인정했다. “몇 명이 파견돼 있느냐”는 질문엔 “생각보다 많지 않은 수”라고 했다. 앞서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달 초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특수 작전·지원 부대 소속 군인 20여 명이 최소 1년 이상 대만에서 육군 일부 부대를 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과 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주(駐)대만사령부를 해체하고 최대 3만명에 달했던 대만 주둔 미군을 철수시켰다. 이후 대만에 있는 미군은 미국 정부 연락 기구인 미국재대만협회(AIT)를 경비하는 소수의 해병대가 전부였다. 하지만 중국이 최근 대만해협 주변에서 해상·공중 훈련을 강화하자 대만 집권 민진당과 미국 의회에서는 양국이 군사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추궈정(邱国正) 대만 국방부 장관은 이날 대만 의회 답변에서 “미군이 대만군의 훈련을 돕고 있고 일부 인원이 장기간 머물고 있지만 ‘주둔’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차이 총통은 이날 인터뷰에서 대만을 “민주 진영의 등불”이라며 “대만이 무너지면 전 세계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 일본, 호주를 거론하며 “권위주의 정권(중국)이 팽창주의적 경향을 보일 때 민주국가들은 함께 뭉쳐서 맞서야 한다”고 했다.
차이 총통의 이날 발언은 최근 대만해협 상황이 양안에 서로 다른 정치 체제가 들어선 1949년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해 있음을 시사한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올 들어 대만 서남부 방공식별구역(ADIZ)을 침범한 중국군 군용기는 680대 이상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특히 지난 4일 역대 최대 규모인 56대의 중국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대만 ADIZ에 침입한 것을 포함해 이달 1~5일에만 중국 군용기 총 150대가 대만해협을 뒤덮었다. 지난 26일에는 중국군 공격 헬기 우즈(武直·WZ)-10이 대만 ADIZ를 비행했다. 중국군의 주력 중형 공격용 헬기인 WZ-10이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만 언론은 “도서(島嶼) 상륙 작전 훈련 목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차이 총통의 CNN 인터뷰는 미국 정부가 대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나와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21일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방어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또 27일 화상으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미국은 대만에 굳은 약속을 했다”며 “대만해협에 걸친 중국의 강압적 행동에 깊이 우려한다”고 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6일 대만의 유엔 기구 참여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차이 총통이 2년여 만에 외국 매체와 가진 이번 단독 인터뷰 역시 미국과 대만 간 조율된 대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군의 대만 주둔 공개가 대만 국내적 목적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광수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는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40%에 불과하고 중국의 군사 위협으로 대만 내 불안감이 높은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해 지지도를 높이려는 의도”라고 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브리핑에서 “대만 독립은 죽음의 길이며 이를 지지하는 것 역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고 했다. 탄커페이(譚克非) 중국 국방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이 대만을 통해 중국을 억제하려는 환상을 가지고 대만군과의 실질적 군사 관계를 확대할 경우 중국은 반격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차이잉원의 미군 주둔 인정 발언은 스스로 죽을 길을 찾는 것’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중국 대륙은 그들(차이잉원 총통과 집권 민진당)에게 역사의 정의로운 심판을 내릴 능력이 있다”고 했다. 대만 안팎에서는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 등 대형 행사를 앞두고 중국이 당장 무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나 시진핑 주석 3연임이 확정된 내년 가을 이후 상황은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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