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친환경 마케팅의 이면

백소용 2021. 10. 2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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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붕어빵 기계 같았다.

이는 요즘 기업 현장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친환경 마케팅의 딜레마다.

요즘 늘어나고 있는 친환경 마케팅의 배경에는 기업 경영의 화두로 떠오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등 떠밀리듯이 친환경 마케팅에 동참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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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붕어빵 기계 같았다. 붕어빵 반죽 대신 잘게 분쇄한 플라스틱 병뚜껑을 틀에 넣고, 양쪽면을 닫아 압착했다가 여니 나뭇잎 모양의 플라스틱 비누 받침대가 톡 떨어져 나왔다. 대부분 파란 병뚜껑이었지만, 모아놓으니 갖가지 농도와 채도의 파랑이 마블링 기법처럼 섞여 플라스틱답지 않게 비현실적으로 고왔다.

한 화장품 회사에서 개최한 업사이클링(폐품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재탄생시키는 것) 이벤트 자리였다. 이 과정을 홀린 듯이 반복해서 보다가 고약한 냄새와 연기에 의식이 미쳤다. 플라스틱을 녹이면서 발생한 연기가 환경에 이로울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플라스틱에 열을 가하면 내분비계 기능을 방해하는 환경호르몬이 발생하는 것은 잘 알려진 상식이다. “몸에 안 좋은 거 아니냐”고 묻자 기계를 다루던 직원은 농담조이긴 했지만 한술 더 떴다. “목숨 내놓고 일하는 거예요.”
백소용 산업부 차장대우
이는 요즘 기업 현장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친환경 마케팅의 딜레마다. 일반 분리배출로는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쓰레기를 의미 있게 활용하며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이런 행사가 누군가에게 깨달음과 생활의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하지만 친환경 활동이 보이는 것과 달리 인간과 환경에 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대부분 감춰진다. 한발 더 나아가면 친환경 이미지만 꾸며내는 이른바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 환경주의)이 될 수 있다.

최근 스타벅스는 50주년을 기념하며 친환경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회용(리유저블) 컵을 무료제공하는 행사를 열었다가 지나치게 고객이 몰리며 역풍을 맞았다. 플라스틱 컵만 잔뜩 양산하게 된 것이다. 이니스프리는 플라스틱을 더 줄이고 종이로 감싼 화장품 용기를 내놨지만 논란을 낳았다. 포장 겉면에 ‘종이병’이라고 적어 용기 전체를 종이 재질로 오인한 소비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 늘어나고 있는 친환경 마케팅의 배경에는 기업 경영의 화두로 떠오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있다. 일반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는 기업의 사회적 활동과 지배구조 개선에 비해 환경 문제는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환경 문제에 조금만 신경을 써도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등 떠밀리듯이 친환경 마케팅에 동참하는 경우도 많다.

유행처럼 뛰어든 친환경 마케팅의 결과는 생산부터 유통, 폐기까지 이어지는 제품 주기에서 일부만 강조된 형태로 나타난다. 기껏 생분해되는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었지만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무용지물이 된다든지, 플라스틱을 줄이는 대신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한 대체재를 만들어내며 탄소 배출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ESG 경영의 최종 목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환경에 대한 당장의 죄책감만 덜기 위한 친환경 마케팅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 환경과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다양하게 고려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활동을 할 때 기업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백소용 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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