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 르몽드 “한국사회 분위기 바꿔”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1. 10. 2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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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복잡한 유산 남겼다”, 중 외교부 “한중 수교에 공헌”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세계 주요 국가의 언론 매체가 그의 공과(功過)를 담은 부음 기사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대부분 외신 매체는 그가 독재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사 동기로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한국의 민주화 진전과 중국, 소련과의 수교 등에 기여했다고 전했다.

27일(현지시각)자 미국 뉴욕타임스 부고면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고 기사가 톱기사로 게재돼 있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미 뉴욕타임스는 27일(현지 시각) 부고면 두 면 중 한 면의 좌측 상단 3분의 2가량을 할애해 노 전 대통령의 기사를 실었다. 노 전 대통령이 1988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연설하는 사진과 1995년 11월 비자금 조성 혐의로 조사를 받으려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 들어서는 사진도 게재했다.

이 신문은 서울발 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을 “군부 지원을 받은 한국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표현하면서 “공산주의 적들과 친교를 맺고,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격렬했던 전환을 견뎌냈지만 내란과 부패 혐의로 수감됐다”고 썼다. 또 ‘하나회’를 비롯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인연, 12·12 군사쿠데타 당시의 역할 등과 함께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북방 외교’ 추진, 1991년 남북 동시 유엔 가입 등의 업적도 소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7일 기사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군부 독재 전환기에 논란이 많은 역할을 했던 한국의 첫 민선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또 “대통령으로서 그는 ‘보통 사람들의 시대’가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며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구축과 남북 관계 촉진에도 공을 인정받는다”고 전했다.

유럽 언론도 노 전 대통령의 공과를 함께 소개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인터넷판에서 그를 ‘한국 민주화의 문을 연 정치인’으로 칭하며 “그의 재임 동안 한국은 지금 헌정의 기초를 닦았고, 최초의 올림픽 개최, 구소련 및 중국 등 공산권과 수교, 북한과 관계 개선 등을 이뤘다”고 했다. 이 신문은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이른바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약속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허용하는 등 오랜 군사독재로 경직됐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바꿨다”고 평가했다.

서울광장에 합동분향소 - 28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고개 숙여 묵념하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부터 30일까지 서울광장에서 일반 시민을 위한 합동분향소를 운영한다. /김지호 기자

영국 일간 인디펜던스는 그를 “군부독재 이후 민주적으로 선출된 한국의 첫 번째 대통령”이라고 소개하면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독재에서 민주화로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경북 달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육사를 거쳐 쿠데타를 주도한 후 대통령이 된 그의 일생도 조명했다. 인디펜던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과정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자, 그는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하는 6·29 선언을 내놨고, 이는 한국 민주화의 시작이 됐다”고 평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자이퉁은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치러진 민주적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라며 “하지만 그의 정치 역정은 대규모 뇌물을 수수한 부패 스캔들로 막을 내렸으며, 이후 그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26일 280자의 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북방 외교 정책으로 한국과 소련, 중국, 동유럽 국가 등과 수교를 맺었다”고 했다.

중국청년보는 28일 “‘보통 사람’ 노태우의 파란만장한 인생 속 4개의 대표적 시각”이란 기사를 게재했다. 정치 불안을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올림픽 개최지 변경론이 나오던 1984년 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장(IOC)을 만나 서울 개최를 위한 담판을 지었던 때를 첫 번째로 꼽았다. 이어 1987년 6·29 선언과 1992년 한중 수교, 그리고 1996년 서울지방법원에서 반란죄로 징역 22년 6월을 선고받던 때를 노 전 대통령 인생의 대표적 장면으로 언급했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논평을 내놓았다. 미국 국무부는 27일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 명의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에 대해 한국 국민들에게 깊은 조의를 전한다”는 성명을 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은 복잡한 유산을 남겼지만, 그의 재임 중 한국 민주주의 전통의 공고화, 유엔 가입,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강력한 공약 등이 이뤄졌다”고 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노태우 선생은 중국의 좋은 친구로 한중 수교와 양국 관계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며 애도를 표했다. 중국어의 ‘선생(先生)’은 남성에 대한 존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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