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이론 - 게오르그 루카치 [이승우의 내 인생의 책 ④]
[경향신문]
나는 책읽기에서 남독(濫讀)의 위험성보다 새로운 지식과 사유를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에 더 방점을 두는 편이다. 학창 시절, 그렇게 접한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설의 이론>이다. 책 초반부의 그 유명한 구절,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에 이끌려 샀던 책이지만, 당시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적어도 문학 이론과 서양 고대 문화 등 교양적 수준에서라도 책읽기에 필요한 사전 지식이 필요했으나, 전공도 아닌 책인 데다 그것도 대학 초년 시절에 그런 지식을 갖출 기회는 없었다. 지금에야 이 책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후의 독서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지금껏 내 마음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상향’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었을 당시가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탓도 크다. 어쭙잖은 지식과 열정만으로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안하던 때, 이 책은 어렴풋이나마 ‘미래’가 총체적 세계로 그려질 수 있음―루카치는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소외되고 분열된 현대인의 의식을 극복해 총체성을 실현해줄 수 있으리라는 자신의 입장을 고도의 철학적·미학적 논리를 통해 피력하고 있다―을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지금 그것을 책 만드는 행위를 통해 내 삶에서 구현해가고 있다. 내가 그려 보이고자 하는 세계, 즉 내 나름의 ‘책’을 통해 그 이상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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