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채경의 랑데부] 밤하늘에 뜬 별, 그 색에 담긴 이야기

한겨레 2021. 10. 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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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채경의 랑데부]색으로 대별되는 차이와 다름에는 안정과 불안정이 공존한다. 다름이 주는 불안정과 다름을 지적할 때 주는 찰나의 안정에 집중하기보다는 차이를 수용할 때 얻는 폭넓은 안정을 취하는 것이 어떨까.

심채경ㅣ천문학자

지구 밖 천체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노려보며 그래프를 그리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분석한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래프 하나에 여러 선을 겹쳐 그려야 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에 들어갈 그래프다. 프린터와 복사기가 대부분 흑백이던 시절에는 실선과 점선, 짧은 실선, 혹은 짧은 실선과 점선이 반복되는 선 따위로 구분해야 했다. 그러자면 그래프가 되도록이면 간단한 편이 좋았다. 여러 선이 겹쳐 있으면 알아보기 어려우니까. 컬러프린터와 컬러복사기의 사용이 많아진 뒤로는 여러가지 색의 선을 겹쳐 그리는 복잡한 그래프나 컬러 사진이 논문에 자주 등장한다.

복잡한 그래프나 사진 자료를 만들려면 비슷한 계열의 색을 여럿 쓸 수밖에 없다. 파란색이라면 명도와 채도를 달리해 하늘색과 민트색과 남색 등을 사용하며 독자가 각각의 선을 구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독자의 모니터는 내 모니터의 색 설정과 다를 수 있다. 프린터로 인쇄를 하면 또 다른 색이 되어버린다. 이쯤 고민하다 보면, 그래프 하나에 너무 많은 정보를 집어넣지 않도록 그래프를 다시 설계하는 게 어떨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오컴의 면도날을 들고 복잡한 그래프 속 선을 가지 쳐야 한다.

그래프를 좀 더 간결하게 다듬어야 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선이 두개만 들어 있어도 알아보기 어려운 그래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느 학술지의 논문 제출 안내서에서 배웠다.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독자도 있으니 하나의 그래프에 빨간색 계열과 초록색 계열의 색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빨강과 초록을 둘 다 써야 한다면 빨강 실선과 초록 점선 등으로 구분하라는 대안도 적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인생을 배운 느낌이었다.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지인 중에 그런 사람이 없더라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많이 있다. 사람이 아니라 자연만을 탐구하는 과학자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천문학에서는 서로 다른 두 파장에서의 밝기 차이를 색 지수, 줄여서 색이라고 부른다. 파랑 혹은 빨강이 아니라 파랑과 빨강의 차이를 주목하는 것이다. 두 파장에서의 밝기를 측정해 구한 별의 색으로부터 별의 온도를 알 수 있고, 그로부터 별의 진화 단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양이다.

그런데 천문학 말고도 색이라는 말로 어떤 차이를 대변하는 경우가 있다. 지역색, 정치색 같은 말이 그렇다. 이런 말은 어떤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이것과 저것의 차이, 나와 너의 차이, 우리와 너희의 차이를 지목할 때 더 자주 쓰인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차이가 실제보다 더 과장되기도 한다. 너는 나와 다를 것이라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색안경을 끼고 있을 때 그렇다.

밤하늘에 뜬 별의 색을 측정하는 것은 그 별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지금까지 어떤 일생을 보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남은 생에 어떤 사건을 차례로 맞이하게 될지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의 색은 누군가를 대상화할 때 쓰인다. 그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하는 개별성을 무시하고 그 대상을 몇개의 짧은 단어로 단순화해 라벨링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쓰인다.

때로는 자신에게 스스로 꼬리표를 붙이기도 한다. 별자리나 혈액형, 성격 유형 분류법에 따라 스스로가 왜 어떻게 남들과 다른지 확인한다. 나와 남의 차이는 내가 뭘 잘못했거나 나만 이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는 원래 그런 특성을 타고났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 지구상에 특정 비율만큼 존재한다는 것에 안도한다. 그러면 누군가가 내게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슬쩍 밀어 올리면서 너는 왜 나와 다르냐고 의구심을 표현하더라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색으로 대별되는 차이와 다름에는 안정과 불안정이 공존한다. 다름이 주는 불안정과 다름을 지적할 때 주는 찰나의 안정에 집중하기보다는 차이를 수용할 때 얻는 폭넓은 안정을 취하는 것이 어떨까. 물론, 빨강과 초록이 한데 난무하는 그래프를 무심코 그려왔던 과거의 나와 논문 제출 안내서에서 가르침을 얻은 지금의 나 사이의 차이는 오래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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