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을까

조기원 2021. 10. 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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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영국 귀족원에서는 오전 10시9분부터 오후 5시52분까지 거의 8시간에 걸쳐 조력자살 허용 법안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미처 의원은 △18살 이상 성인으로 의사 결정 능력이 있고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으며 6개월 내 사망이 예상된다는 진단을 받았고 △2주간의 숙려 기간을 거치고 △의사 2명과 법원의 허가를 받을 것을 조건으로 조력자살을 허용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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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모폴리턴]

[코즈모폴리턴] 조기원ㅣ국제뉴스팀장

“인구의 약 52%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의 마지막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는 것을 봤다는 보고가 있다. 조력자살은 그런 죽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고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게 할 것이다.”(몰리 미처 영국 귀족원 의원)

“슬프게도 나는 이 법안이 안전하지 않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이 완벽하지도 않고, 모든 가족이 행복하지도 않으며 모든 사람이 친절하거나 동정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 이런 식으로 법이 바뀌면 취약계층이나 장애인이 똑같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게 된다.”(저스틴 웰비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

지난 22일 영국 귀족원에서는 오전 10시9분부터 오후 5시52분까지 거의 8시간에 걸쳐 조력자살 허용 법안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조력자살은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린 이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안락사의 일종이지만 환자 본인이 약물 주입을 한다는 점에서 의사가 약물을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다. 영국은 1961년 법률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조력자살을 금지했으며 위반할 경우 최고 14년형에 처해질 수 있도록 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규정이 명확하지 않지만 역시 처벌될 수 있다. 미처 의원은 △18살 이상 성인으로 의사 결정 능력이 있고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으며 6개월 내 사망이 예상된다는 진단을 받았고 △2주간의 숙려 기간을 거치고 △의사 2명과 법원의 허가를 받을 것을 조건으로 조력자살을 허용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영국에서는 2003년과 2014년에도 조력자살 허용 법안이 제출됐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통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세계적으로 보면 빗장을 조심스럽게 푸는 곳이 나오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률이 다음달 6일부터 발효된다.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가 된다. 앞서 2년 전인 2019년 뉴질랜드 의회는 ‘생명 종식 선택 법’이라는 법률을 통과시킨 뒤 국민투표를 거치기로 했다. 법안 내용은 6개월 안에 숨질 수 있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이어지면 의사 2명의 진단을 통해 조력자살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통과되고 다시 1년 뒤에야 법이 발효된다. 이 법이 담은 내용의 무게가 보인다. 최근에는 오스트리아 정부도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의사 2명의 상담을 거치고 원칙적으로 12주간의 숙려 기간을 거쳐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앞서 지난해 말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는 조력자살 금지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판결에 따라 법안을 제출했다.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는 아직 소수이며 대부분 서구권 국가다. 어떤 죽음을 맞을지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주장을 두고 오랫동안 치열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진 뒤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고 있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누구도 결론 내릴 수 없으며, 영국처럼 논쟁이 진행 중인 곳도 많다. 데이비드 골드 영국 귀족원 의원은 22일 토론에서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숨겨진 설득”이 있을 수 있다며 조력자살 합법화 법안을 반대했다. 이런 현실적 우려에도 충분히 머리가 끄덕여진다.

조력자살을 합법화할 수 있을지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논쟁 대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배경에는 인구 고령화와 이에 따른 다사(多死) 사회로의 이행이 있다. 이전에는 금기시됐던 생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점점 회피하기 어려워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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