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자는 독자였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이정규 2021. 10. 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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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슬기로운 기자생활] 이정규ㅣ한겨레21부 취재2팀 기자

<한겨레21>에서 일하다 보면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두달마다 돌아오는 단박인터뷰 코너에서 한겨레21을 애정하는 독자를 인터뷰해서다. 전화기 너머 그들을 만나 묻고 듣고 쓰는 일로 자연스레 힐링이 된다. 이전까지 주로 만났던 독자는 포털에 전송된 기사에 댓글을 달며 <한겨레>를 따끔하게 혼내던 이들이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그 관심이 싫지는 않았지만 일에 치여 지친 마음을 위로받지는 못했다.

인터뷰를 하며 만난 세명의 독자는 기자의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문장들을 남겨줬다. “한겨레21은 항상 내 감각을 깨워준다. 세상엔 외면해도 알아야 할 문제가 있고 결국 그 문제는 내게 돌아온다는 걸 느낀다”(조은지 독자), “디지털 세상 속에서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잃지 않게 해준 나의 영원한 벗”(김미경 독자), “한겨레21 덕분에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박홍인 독자). 그러고 보니 나도 한때는 독자였다. 이 기억을 그들과 만나 떠올리게 됐다.

2003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한겨레21과의 첫 만남. 국어 선생님 제안으로 교실마다 이 매체가 한부씩 들어왔다. 40여명의 반 친구들은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탐독했다. 나 역시 매주 한겨레21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해 6월에는 배경록 당시 편집장이 전남 목포의 한 고등학교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학교 부탁으로 독자 강연이 열렸다. 20명이 넘는 친구들은 점심시간인데도 강연을 들으려 우르르 달려갔다. 소심한 나는 선착순에 들지 못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로 한 친구는 고등학생도 보는 잡지인 한겨레21에 담배 광고가 실려도 되냐고 물었다고 했다.

‘담배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겨레21에서 담배 광고가 빠졌다. 그 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독자의 애정 어린 응원뿐만 아니라 따끔한 지적을 받아들일 줄 아는 언론. 내가 기억하는 한겨레의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이 좋아서였을까.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뒤 집에서 구독해서 보기 시작했다.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자 관련 기사는 내게 큰 흔적을 남겼다. 먼저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보며 의문이 생겼다. 왜 시민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까지 바쳐야 하는지. 국가가 시민에게 지나치게 애국심을 강요하지 않는지. 윤리 선생님에게 찾아가 질문하기도 했다. 군대에 갈 때가 되자 제식훈련보다 대민봉사 업무가 많은 해양경찰 전경이라는 우회로를 택했다. 한겨레21 덕분에 고민 많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한겨레21 기자로 일하는 지금. 누군가는 성공한 덕후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줄지 모르겠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다. 한겨레를 애정했던 독자들 가운데 마음이 떠난 이들이 많아서다. 아쉬움이 가득하다. 기자와 독자는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싸우다가 화해할 수도 있다. 다만 뉴스룸에서 분출된 기자들의 여러 의견이 독자에게 얼마나 겸손하게 충분히 설명됐는지 의문이다. 떠나간 독자의 마음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일을 할수록 독자와 멀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좋은 독자는 저널리즘을 떠나나 싶어 두렵다.

열정 넘쳐야 할 주니어 기자지만 요즘 목표는 소박하다. 독자의 삶에 작은 흔적을 남기는 기사를 쓸 것. 동료에게 폐 끼치지 말 것. 후배에게 더 나아진 한겨레를 선물할 것. 쉬워 보이진 않는다. 주변을 보면 의기소침한 주니어 기자가 많아서다. 언론을 향한 비판은 넘쳐나고 한겨레는 더더욱 애쓰고 있다. 기자로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기자의 좌표는 좋은 독자라는 말을 되뇐다. 그동안 써온 기사를 살펴보며 아쉬운 지점을 짐짓 비평하곤 한다. 앞으로 저널리즘을 아끼고 한겨레를 애정하는 독자를 더 많이 만날 수 있을까. 모든 기자는 한때 독자였다. 그때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애쓰고 또 애쓴다면. 언젠간 그들과 함께하고 있을 거라고 감히 소망해본다.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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