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보미 지휘자 "월드비전 합창단과 새로운 도약 준비 중"

박지현 2021. 10. 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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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미 지휘자 /사진=월드비전
"월드비전 합창단은 이전에 제가 지휘했던 빈소년합창단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팀이에요. 노래를 부르는 출발점이 다르지요. 60여년의 역사를 가진 월드비전 합창단은 팬데믹 이후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았던 1960년, 한반도에 노래의 씨앗이 뿌려졌다. 부모와 집을 잃은 36명의 여자 아이들과 7명의 남자 아이들은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의 단원이 되어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희망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사명을 품고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남겨진 아이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월드비전 합창단(옛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은 국내 최초의 어린이 합창단으로 1978년 영국 BBC 주최 세계합창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2016년 헝가리 칸테무스 국제합창 페스티벌에서 3관왕을 달성하는 등 국내외에서 실력을 꾸준히 인정받으며 61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8월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된 월드비전 합창단의 정기공연 '레퀴엠' /사진=월드비전

팬데믹으로 함께 모여 노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 때이지만 월드비전 합창단은 멈춰버린 듯한 이 시기를 오히려 재충전의 기회로 생각하며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 정중동 행보를 이끄는 이는 김보미 지휘자다. 2012년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상임지휘자이자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 발탁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2013년 오스트리아 최고의 합창지휘자에게 주는 '오트너 프라이스'를 받기도 한 그는 2016년 주변의 만류에도 종신직인 빈소년합창단 지휘자 자리를 내려놓고 귀국한 뒤, 모교인 연세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던 중 2018년 3월부터 월드비전 합창단의 제7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해 합창단을 이끌고 있다.

27일 서울 내발산동에 위치한 월드비전 음악원에서 만난 김보미 지휘자는 "벌써 이곳에 지휘자로 취임한지 4년이 되어가고 있다"며 처음 월드비전 합창단을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김 지휘자는 "월드비전 합창단에 대해서는 공연을 보기 전에도 익히 알고 있었다. 월드비전 합창단을 30년 넘게 이끌어온 윤학원 선생님은 저의 오랜 선배님이시자 선생님이셨다"며 "윤 선생님이 계셨을 때 처음 연주를 봤는데 '굉장히 단단한 합창단'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합창단 / 월드비전 제공

잘 훈련된 청소년 단원들은 첫 만남 때부터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였다. 김 지휘자는 "월드비전 합창단은 빈소년합창단 못지 않게 빈틈없고 잘 훈련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원들 또한 자부심이 컸다"며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한 덩어리와 같은 느낌을 받았고 한국적인 레퍼토리와 외국 레퍼토리 사이의 밸런스도 잘 잡힌 합창단이라 느껴졌다"고 밝혔다. 김 지휘자는 "오랜 전통을 가진 합창단을 맡게 돼 감사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들을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무거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부담도 잠시, 김보미 지휘자는 청소년 단원들과 함께 연습하며 금새 단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빈소년합창단에서 쌓은 노하우는 그에게 큰 자산이었다. "청소년 합창단에서 지휘자는 음악적 선배일뿐더러 인생의 선배로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필요하고 윤리적인 규범을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며 "이에 더해 아이들이 각자 가진 다른 능력과 세밀한 감정의 교류 포인트를 찾을 수 있도록 민감함도 유지해야 한다"고 김 지휘자는 말했다. 그는 "결국 음악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가르침에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여야 노래가 되고 그래야 청중에게 울림과 감동을 전할 수 있다. 노래하는 아이들의 눈과 몸짓을 통해 등 뒤에 있는 청중들의 감동 섞인 리액션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지휘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2020년 서울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진행된 월드비전 합창단 60주년 기념 '음악 전시회' / 월드비전 제공

1961년 제1차 해외연주를 시작으로 57차 이상의 해외연주 활동을 펼쳐온 월드비전 합창단은 지금까지 미국, 독일, 핀란드, 헝가리 등 전세계 55개국에서 1500회 이상 연주를 해왔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문화 외교사절의 역할도 감당해왔다. 하지만 최근 2년 동안은 전 세계에 확산된 코로나19 여파로 의도치 않게 잠잠히 머물러 있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김 지휘자를 비롯한 단원들, 또 이들을 응원하는 관객들에게 고단한 시간이었다. 김 지휘자는 "합창 연습은 옆 사람의 소리를 들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데 서로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아 '줌' 등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설치해 연습을 하기도 했고 파트별로 소수의 인원만 모여 연습을 진행해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며 "다행히 최근에 규제가 완화되면서 음악원 각 층별로 단원들을 나눠 연습을 진행하기도 했고 단원들 사이에 가벽을 세워 방역 수칙을 지키는 선에서 함께 연습을 할 수 있게 됐다. 마스크를 쓰고 노래를 하는 상황에서 호흡 곤란을 겪는 단원들도 있었지만 단원들의 열정에 더해 저희를 믿고 기꺼이 단원들을 보내주신 부모님들의 믿음의 힘도 컸다"고 말했다.

연습은 꿋꿋이 이어왔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무대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김 지휘자는 "연습은 어떻게든 진행했지만 공연을 올리지 못하는 시간들이 많아 힘들었다"며 "하지만 생각을 돌이켜 이 멈춤의 시기에 어떻게 하면 합창단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까를 더 깊게 고민할 수 있어 감사했고 유익했다"고 했다. 김 지휘자는 "월드비전 합창단은 1990년대 한차례 구성원의 변화를 맞이하며 전문적인 연주단체로 거듭났는데, 이제 음악적 구성과 합창단의 색채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의 개성을 좀 더 끄집어 내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쉽지 않았지만 김 지휘자와 월드비전 합창단은 코로나 시국 속에서 이러한 변화의 행보를 한발씩 내보였다. 창단 60주년이었던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 넘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월드비전 합창단과 김 지휘자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 우리의 공연을 눈으로 보여주자"라는 생각에 서울 인사동 갤러리를 빌려 '음악 전시회를' 기획했다. 지난 봄에는 버추얼 콰이어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또 지난 8월에는 방역지침이 완화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정기연주회 '레퀴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제 곧 다가올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연말에 창작 칸타타 공연을 준비하는 등 다시 정상적인 공연 활동을 재개할 준비를 완료했다.

김 지휘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합창단 활동을 했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저는 합창의 순기능을 믿는다. 점점 개인화되어가는 이 시대에 서로 호흡을 맞추며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고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합창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나 노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일에 제 열정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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