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염전노예' 사건..인권단체가 경찰청 직접 수사를 촉구하는 이유는

반기웅 기자 2021. 10. 2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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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8일 장애우권인문제연구소, 공익법센터 어필 등 인권단체들이 염전노예 인신매매 사건에 대한 경찰청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이른바 ‘제2의 염전노예’ 사건이 발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인권단체들은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안군 염전에서 7년 동안 노동착취를 당한 피해자를 확인했다”며 “2014년 신안군 염전노예사건과 같은 학대범죄가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소 측은 이날 염전 사업장 업주를 장애인복지법 위반과 상습준사기, 감금 등의 혐의로 고소하고 해당 사건을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에서 직접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ㄱ씨(53·경계성 지능장애)는 2014년 직업소개소를 통해 ㄴ씨(48)가 운영하는 전남 신안군 증도면 염전 사업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ㄱ씨는 2014년부터 지난 5월까지 7년 간 새벽 3시부터 밤11시까지 일했다. 당초 매달 140만원을 지급받는 근로계약을 체결했지만 ㄴ씨는 사업상 사정을 이유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ㄴ씨는 일정 금액을 ㄱ씨의 계좌에 넣기도 했는데 입금 뒤 곧바로 ㄱ로 하여금 출금하도록 지시해 돌려받았다. 임금 뿐 아니라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된 코로나19 재난지원금마저 ㄴ씨가 챙겼다. ㄱ씨를 비롯한 염전 노동자 14명은 외출도 금지됐다. 1년에 한 두 번 있는 단체 외출 때는 5인1조로 이동했고 관리자가 동행했다.

지난 5월 염전을 빠져나온 ㄱ씨는 친누나의 도움을 받아 6월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그러나 진정을 접수한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은 합의를 유도했다. 중간에서 합의 문안을 문자메시지로 전송해주기도 했다. 노동청의 중재로 ‘합의금 400만 원’에 진정 사건은 종결됐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조사 과정은 생략됐고 합의서도 작성되지 않았다. ㄱ씨가 7년간 받은 임금은 합의금 등 400여 만원이 전부다.

2014년 신안 염전노예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해당 지역 염전노동자의 노동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졌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연구소는 지역 경찰과 노동청, 자치단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형식적인 조사에 그칠 뿐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염전사건은)지역경찰과 연루돼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무분장 규칙에 따라 반드시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청은 사무분장상 이 사건을 본청에서 맡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중대범죄수사과는 기업범죄나 공무원 범죄, 내부비리와 같은 사건을 담당한다”며 “수사 현실을 고려해도 지역에 정통한 수사팀에서 사건을 맡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경찰청은 최근 ㄴ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사생활 감시 등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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