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에도 핵무기 폐기 호소한 운동가 '쓰보이 대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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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포기하지 마라"를 외치며 평생 핵무기 폐기 운동에 헌신한 쓰보이 스나오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 대표위원이 별세했다.
퇴직 뒤인 2000년 피단협 대표위원이 됐고, 2004년 히로시마현 원폭 피해자단체협의회 이사장을 겸임하며 핵무기 폐기 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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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호흡까지 핵 폐기를 포기하지 않겠다" 외쳐
“절대 포기하지 마라”를 외치며 평생 핵무기 폐기 운동에 헌신한 쓰보이 스나오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 대표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96.
<아사히신문>은 쓰보이 위원이 지난 24일 빈혈로 인한 부정맥으로 히로시마 시내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28일 보도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공업전문학교 3학년이던 쓰보이 위원은 원폭이 투하될 당시 ‘폭심지’로부터 약 1.2㎞ 떨어진 곳에서 피폭당해 전신 화상을 입었다. 40일 넘게 의식불명 상태로 지냈고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그는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기 시작했다.
중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피폭 체험을 들려주며 원폭의 참상을 알렸다. 퇴직 뒤인 2000년 피단협 대표위원이 됐고, 2004년 히로시마현 원폭 피해자단체협의회 이사장을 겸임하며 핵무기 폐기 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그는 일본 내에서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보유한 영국, 프랑스, 중국 등 21개국을 찾아 핵무기의 위험을 경고했다. 피폭 70년을 맞아 지난 2015년 8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유엔 군축회의에선 “마지막 한 호흡까지 핵무기 폐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호소했다. 2016년 5월 버락 오마바 당시 미국 대통령이 현직으로는 처음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 원폭 피해자 대표로 그를 만났다. 쓰보이 위원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원폭 투하는) 인류가 잘못한 일의 하나다.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서 미래를 향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90살이 넘어서도 뙤약볕 아래 평화기념공원에서 핵무기 폐기 서명을 호소하고, 핵실험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피폭 후유증으로 입·퇴원으로 반복하고 여러 차례 위독한 상태에 빠졌어도 그는 핵무기 참상을 증언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핵무기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네버 기브 업(Never give up)입니다.” 그는 누굴 만나든 항상 이 말로 마지막을 끝맺었다고 한다.
애도도 이어졌다. 마쓰이 가즈미 히로시마 시장은 “네버 기브 업의 정신으로, 다음 시대를 지탱할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테니 편하게 쉬세요”라고 말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히로시마를 연고지로 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기자단에게 “저 자신이 피폭지 출신의 총리로 핵무기 없는 세계의 실현을 위해 쓰보이 위원의 마음을 새기면서 앞으로 나아갈 각오”라고 밝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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