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그분'은 누구인가? 조금씩 바뀐 남욱의 발언
나흘간의 기다림
취재진은 이후 남 변호사 집 앞을 수시로 오가며 남 변호사가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전혀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사흘째 되는 날, 남 변호사가 LA총영사관에 여권을 반납했고 곧 한국으로 들어갈 거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오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린 자녀들을 반드시 한 번은 보고 귀국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취재진은 남 변호사의 출국일 하루 전날 저녁, 무작정 다시 남 변호사의 집 앞을 찾았다. 혹시 집에 벌써 와 있으려나 초인종이라도 한 번 눌러보려 차에서 내렸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깜깜한 어둠 속 검은 실루엣이 점점 취재진 쪽으로 가까워지면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긴 머리에 마른 체형, 피곤한 듯 초췌한 얼굴, 남욱 변호사였다.
기다림이 길어서였을까. 마치 연예인을 본 것 같은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인사를 하고 다가갔다. 이 늦은 시간까지 집 앞에 기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남 변호사는 처음에는 다소 놀라는 눈치였지만, 금세 여유를 찾았다. 이내 환하게 웃으며 정중하게 인터뷰를 거절하던 남 변호사는, 나흘을 기다렸다는 기자의 말에 그러면 궁금한 사안 몇 가지만 답을 하겠다며 발길을 멈췄다. 그렇게 1시간 반이 넘는 남욱 변호사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그분'에 대한 답변이 바뀌다
그런데 남 변호사의 발언에 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김만배 회장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JTBC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그분'을 묻는 질문에 남 변호사는 '김만배 회장이 가장 연장자였으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는 '형 동생' 호칭을 사용했지, '그분'이란 표현은 쓰지 않았다'고 했었다. 김만배 회장이 말한 '그분'이 유동규 전 본부장은 아니라고 해석되는 이 대답은 여운을 남겼고, 이튿날 그렇다면 이재명 후보가 아니겠느냐며 정치권에 큰 논란이 됐던 터다.
하지만 기자가 '그분'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다시 묻자 이번엔 답이 바뀌었다. 김만배 회장도 유동규 전 본부장도 자기들끼리 모였을 때에는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을 부를 때 '이재명 시장, 이재명 시장' 이렇게 불렀지 '그분' 같은 높임말은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앞선 JTBC의 화상 인터뷰에서는 '그분'이 유동규 전 본부장은 아니라고 해석되는 답을 했다면, 이번에는 이재명 후보는 아니라고 읽히는 답을 한 것이다. 다만 '이재명 후보가 아니다'라고 확실히 말하지는 않았다. 우선 그 녹취가 이뤄지던 자리에 자신이 없었기에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이 이렇게 커진 건 유력 대선 주자와 연관이 됐기 때문이 아니냐며, 그렇기에 자신이 정치인 이름을 직접 언급해 정치에 연루되는 것 자체가 겁나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런데 남 변호사의 '그분' 관련된 답변은 SBS와의 이 대화 바로 다음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또다시 바뀐 것으로 보인다. JTBC 보도에 따르면 남 변호사는 취재진이 물어보기도 전에 '그분'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한 이재명 후보와 관계없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귀국이 다가오면서 '그분'에 대한 남 변호사 발언의 뉘앙스가 바뀌는 듯하더니, 급기야 정치인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겠다던 이전 입장을 깨고 '이재명 후보는 아니다'라며 매우 적극적으로 부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남 변호사는 집 앞에서 나눈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일개 업자'라며, 대장동 의혹이 대선판을 요동할 정도로 커져 겁이 난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검찰이 자신을 "어떻게든 '골인'(구속)시키려 한단 얘기를 들었다"며, 솔직히 들어가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했다. 특히 김만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점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김 회장의 죄까지 뒤집어쓰는 건 아닌지를 걱정했다. 남 변호사는 자신의 신변에 대한 걱정도 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재명 후보가 자신을 찾으려고 미국에 사람을 보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라며, 자신이 지은 죄는 처벌받겠지만 자신이 짓지 않은 죄까지 처벌받을까 겁이 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남 변호사는 자신이 언론과 한 인터뷰를 보고 검찰에서 연락이 왔었다며, 오늘 한 이야기도 보도가 되면 자신이 불리해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
"유동규 전 본부장이 '사장 될 것'이라고 말해"
그 부분은 그렇다 쳐도 "유동규 본부장이 사장이 된다"는 발언은 왜 했느냐고 묻자 남 변호사는 "본인이 그렇게 말을 했으니까. 본인이 되고 싶다고 하고 다녔으니까" 라고 답했다. 당시 유동규 본부장이 자신이 차기 사장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기자가 "그렇다면 유동규 전 본부장이 당시 자신의 인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였느냐"고 되물었고, 남 변호사는 다소 당황한 듯 "그거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본인이 친하다면 친한 줄 알고, 안 친하다면 안 친한 줄 알고 그런 거지"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후부터는 당시 상황을 재차 묻는 기자의 질문에 더 이상 답을 하지 않고 회피했다.
요란했던 귀국…지지부진한 검찰 조사
일견 소란스러워 보였던 남 변호사의 검찰 조사는 그러나 구속영장 청구도 없이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검찰이 남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준비 중이라는 기사가 보이고는 있지만, 행여 김만배 회장 때처럼 기각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있는 듯하다. 남 변호사는 국내 대형 로펌을 선임해 귀국 전부터 검찰 조사에 대응해왔다. 남 변호사는 가족이 있는 샌디에이고 집을 떠나 모처에 홀로 떨어져 사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 시차에 맞춰 밤새 변호사들과 전화 통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 변호사는 본인이 먼저 언론을 찾아간 적은 없지만, 자신을 찾아온 언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 기회에 자신이 말하고픈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남욱 변호사의 조사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키맨'이라는 수식어처럼 대장동 의혹을 풀 열쇠가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사진=연합뉴스)
▷ [단독] 남욱 "유동규 본인이 사장 될 거라고 직접 말해"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499793 ]
김종원 기자terryab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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