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격전지 '백마고지'..70년 만에 발견된 음료수병의 사연

문혜정 2021. 10. 28.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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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전투에 진지 두 배 깊게 팠다"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인 백마고지 일대에서 지난 9월부터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국방부는 약 60일간 발굴한 유해 및 전사자 유품들이 지표면으로부터 약 1.5m 깊이에서 나왔다고 28일 밝혔다. 앞서 인근 화살머리고지 지역의 경우 최대 60㎝ 깊이에서 발굴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깊은 것이다. 군은 백마고지의 개인호, 교통호 등의 진지들도 화살머리고지에 비해 두 배 이상 깊게 구축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왜일까. 

 뺏고 뺏기는 전투…진지 더 깊게 팠다

백마고지는 과거 6·25 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다. 주인이 수십차례 바뀌는 상황에서 적과 아군 모두 고지를 사수하고 포탄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기존 대비 더 깊게 진지를 파고 들어간 것으로 군은 추정했다. 그만큼 당시의 전투가 치열했다는 의미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와 유품의 특성도 당시 백마고지의 전투상황을 추측할 수 있게 만든다. 현재까지 수습된 26점의 유해가 모두 '부분유해' 형태로 백마고지에 쏟아졌던 다량의 포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북서쪽으로 약 12㎞ 지점에 있는 해발 395m의 고지인 백마고지는 6·25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했다고 해 '백마고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1951년 7월 정전회담이 시작된 이후에도 최종 군사분계선을 확정짓기 위해 한국·유엔군과 북한·중공군이 피비린내 나는 교전을 했다.   

1952년 10월 6~15일 열흘간에도 고지의 주인이 계속 바뀔 만큼 혈전이 벌어졌다. 결국 국군 9사단이 규모가 세 배가 넘는 중국군에 맞서 총 12차례의 공격과 방어전투를 수행했고 결국 승리했다. 수 천명의 국군전사자들이 조국을 위해 죽거나 다치는 희생이 따랐다.

이 곳에서 발견된 유품은 96%(4927점)가 우리 국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은 탄약류(4980여점, 전체의 97%)다. 야삽, 철모, 탄피 등 각종 탄약과 전투 장구류가 포함돼 있다. 특이유품으로 음료수병을 활용한 화염병이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고지를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탄약류 등을 긴급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긴박한 순간을 반증하고 있다"며 "화염병 등을 활용한 진지 공격 등의 전투기술이 활용됐을 것으로도 추정된다"고 말했다. 

 11월 중순, 노령의 참전용사 현장 증언 및 견학

국방부는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유해들이 대부분 국군전사자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신원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정밀감식과 DNA 분석 등을 통해 확인할 예정이다. 

이달 중순에는 9명의 백마고지 전투 참전용사들을 모시고 현장증언 청취도 진행할 계획이다. 6·25전쟁 당시 9사단, 2사단, 노무사단 등 대한민국 국군으로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한 90세가 넘은 영웅들은 귀환하지 못한 전우들을 찾아 현장을 찾는다. 

국방부는 "우리 군은 6‧25전쟁 전투기록과 참전용사들의 증언, 백마고지 현장의 지형적 특성 등을 면밀히 연구하면서 유해발굴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6·25전쟁 전사자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의 유해발굴 작업은 2018년 남북한 ‘9‧19 군사합의’를 통해 시작됐다. 그러나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남측만 단독으로 진행하는 상황이다.

군은 "언제든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제반 준비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국회 국방위원회 일부 야당 의원들은 "북한의 협조 없이 남측만 지뢰 등을 제거하며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어 형평성 및 안보상 문제들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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